디지털자산(가상자산·암호화폐) 기본법이 연초 발의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업계에서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거래소 사업에 편중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정부가 디지털자산에 대해 진흥책 없이 규제 일변도로 접근하다보니 다양한 시장이 꽃피지 못하고 투자 수익에 혈안인 개인들이 몰리는 거래소만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형적 시장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가 마련될 때마다 기준이 거래소에 맞춰졌고 정작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나 개발사는 제도 설계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와 금융당국은 오는 1월 중 디지털자산 기본법 '정부 안'을 발의하기 위한 막판 협의 중이다. 금융당국은 그간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 등을 담은 기본법(2단계 법안)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업계가 기대했던 기본법 역시 거래소 규제 및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발의된 디지털자산 기본법, 혁신법 등 법안에서도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 혁신 환경을 마련하거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핵심 조항은 아니다.
주된 논의 축은 여전히 △디지털자산 발행·유통 규제 △거래소 인가제 및 의무 △스테이블코인 발행·준비금 요건 등 '규제 중심'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자산 규제 외에 블록체인 기술·서비스 육성을 위해 별도의 제도를 마련해둔 해외와 대조된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디지털자산 기본 법안인 '미카(MICA)'를 통해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규제와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를 마련하고, EU 디지털혁신위원회(EDIC) 차원에서는 블록체인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블록체인 노드(블록체인 네트워크 참여자) 구축을 EU 차원에서 지원하며 블록체인 스타트업 및 개발사에는 연구비를 제공한다.
싱가포르 역시 가상자산사업자 및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는 싱가포르 통화감독청(MAS)이 담당하지만, 블록체인 기술 및 서비스 육성은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이 담당하는 이원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IMDA는 DID, 대체불가능토큰(NFT), 탈중앙화자율조직(DAO) 등 블록체인 기술 중심의 프로젝트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금융당국이 디지털자산 규제를 맡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한 다른 정부 기관 주도로 블록체인 기술 육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는 과기부 주도 블록체인 공공 프로젝트 같은 시범사업 정도만 존재한다.
SK플래닛, LG CNS 등 다수 대기업이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든 만큼 육성 정책을 통해 포용해야 하는 기업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더 많은 기업들이 사업을 접기 전에 '골든 타임'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롯데홈쇼핑, LG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수익성 악화와 지원 정책 부족 등을 이유로 NFT 사업을 접은 상황이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의 '거래'와 '금융' 측면은 금융위가,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 진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담당하는 '투트랙' 전략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며 "일부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한해선 규제를 완화해주는 한국형 혁신 샌드박스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