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가스·곡물 공급망을 뒤흔들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재래식 전쟁이자, 전형적인 에너지·곡물 전쟁으로 꼽힌다. 이후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가스·원유 의존도를 급격히 낮추면서 국제 가스·석유 가격이 급등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곡물·비료 수출 차질은 글로벌 식량 위기로 번졌다.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국제 관계를 다루는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에너지 지도가 몇 년 만에 재편됐다”며 “러시아산 가스 의존에서 LNG·재생에너지·핵발전 중심으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도 당시 에너지 수입 가격 급등으로 무역수지 악화와 전기요금 인상을 겪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4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동유럽 전쟁’이 아니라 가스·석유·곡물 공급망을 한꺼번에 뒤흔든 첫 번째 충격파였다.
◇베네수엘라 때린 미국 “석유는 우리가 운영한다”
두 번째 충격파는 베네수엘라에서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직후 “안전한 권력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미국이 임시로 통치하겠다”며 “베네수엘라의 석유 인프라를 복구해 대량의 석유를 팔 것”이라고 밝혔다.
CNN와 CNBC,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미국 석유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노후 인프라를 복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기준 약 3032억 배럴에 달하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전체 매장량의 약 20%다.
하지만 실제 생산량은 하루 약 100만 배럴로, 전 세계 생산량의 0.8%에 불과하다. 마두로 정권 출범 전인 2013년 이전 생산량(350만 배럴)의 3분의 1 수준이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는 전성기 생산량으로 복귀하려면 580억 달러(약 84조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수년간 제재·투자 부족·관리 부실로 붕괴된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이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시장 분석업체에서는 “베네수엘라가 제대로 돌아가면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중동산 원유에 대한 대체·압박 카드가 될 수 있다”면서도 “정치·치안·법적 리스크가 크다”고 전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세 번째 축은 그린란드다. 베네수엘라 작전 직후 트럼프는 “우리는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9년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했다가 거절당한 이후에도 북극·핵심광물 논쟁에서 그린란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지정한 50개 핵심 광물 중 39개가 그린란드에 있다. 희토류, 니오븀, 우라늄, 니켈, 구리, 그래파이트, 백금족 금속 등이다. 미국은 이미 그린란드 북서부 피투피크 기지에서 미사일 조기경보·우주 감시를 수행하며 북극 항로와 러시아·중국의 북극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CNBC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집착 배경에는 중국이 장악한 희토류 공급망을 우회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60~70%를 차지한다.
◇“자원·안보 이익을 위한 무력 사용이 정상 옵션으로 부상”
이 세 축을 겹쳐 보면 공통된 키워드는 ‘에너지·자원’이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을 내세웠지만 우크라이나는 유럽 가스·곡물 허브였다. 미국은 민주주의 회복을 강조했지만 트럼프의 언어는 석유와 미국 기업의 이익으로 향한다. 그린란드는 북극 안보 뒤에 에너지 전환 핵심 자원이 숨어 있다.
다시 말해, 공급망 재편의 전면전이다.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에서 탈피해 LNG(액화천연가스)·재생에너지로 새 지도를 그리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회복되면 미국은 러시아·중동 의존도를 조정할 옵션을 얻는다. 그린란드 개발은 중국 공급망을 흔들 잠재력으로 거론된다.
이는 규범의 약화와 힘의 정치 정상화로 풀이된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와 CFR 등은 “강대국들이 국제법 경계선을 밀어붙이면서 자원·안보 이익을 위한 무력 사용이 ‘정상적인 옵션’으로 부상했다”고 우려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과 무역수지 악화를 겪었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 산업은 희토류·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 공급망에 절대적으로 묶여 있다.
미국·EU는 ‘우방국 공급망’을 내세우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으로 동맹국들에 사실상 진영 선택을 요구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스·석유의 위험’을 보여줬다면, 베네수엘라와 그린란드는 ‘석유 이후 시대에도 자원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