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너머의 시간, 일터를 떠난 뒤의 노동, 그리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백으로 남는다. 진정한 안전 사회란 사고가 ‘0’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사고 이후의 삶이 ‘0’으로 떨어지지 않는 사회다.
(사진=제미나이로 생성)
우리는 오랫동안 ‘사고를 방지하는 일’에 집중해 왔다. 예방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고를 막지 못했을 때, 사회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보상금 지급과 치료 지원으로 책임은 끝나는가, 아니면 그 이후의 삶까지 포함해야 하는가.
최근 우리 협회가 장애인 e스포츠 연맹과 산업재해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 협력을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논의의 핵심은 e스포츠가 아니다. 핵심은 ‘사고 이후에도 노동은 가능한가’, ‘노동이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는 그 경로를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신체적 제약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노동 가능성이 일괄적으로 차단되는 구조는 안전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
지금의 고용 구조는 여전히 ‘정상 노동자’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개인은 보호의 대상이 되거나 관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보호와 관리는 노동의 대체물이 아니다. 인간에게 노동은 단순한 소득 수단이 아니라 사회에 참여하고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산업재해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경로가 열려 있느냐는, 그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장애 유형과 정도, 연령, 거주 지역에 따라 재취업 가능성은 크게 달라진다. 개인 의지와 무관하게 구조적 요인이 사고 이후 삶의 궤적을 결정짓는다. 통증장애나 중증장애를 가진 노동자는 원직장 복귀보다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아예 노동시장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다.
e스포츠와 디지털 콘텐츠 기반 직무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산업이 아니라 방식의 전환이다. 선수, 코치, 운영 인력, 콘텐츠 제작,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역할은 신체 조건이 아니라 역량과 경험을 기준으로 설계될 수 있다. 이는 산업재해 장애인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기존 노동 설계의 빈틈을 메우는 실험이다.
부동산 개발에서 우리는 ‘지속 가능성’을 말한다. 건물이 지어진 뒤에도 유지되고, 활용되고, 순환되는 구조를 설계한다.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노동 경로가 있어야 한다. 산업단지, 물류센터, 건설 현장 같은 고위험 공간일수록 사고 이후를 준비하지 않는 안전은 불완전하다. 공간을 설계할 때 안전을 고려하듯, 노동을 설계할 때도 회복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 구조적 책임은 구조적으로…안전, 사고 이후까지 책임져야
산업재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그렇다면 책임 역시 구조적으로 져야 한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고 사망만인율은 지난 20년간 0.43‰ 수준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OECD 38개국 중 34위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고 ‘제로 산재 사망’ 로드맵을 국가과제로 채택했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구조뿐 아니라 사고 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않은 구조도 문제다.
우리는 종종 안전을 비용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사고 이후의 배제, 장기 실업, 사회적 고립이 만들어내는 비용은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단절된 삶은 사회 전체의 위험 요소다. 한 사람의 노동이 중단되면 그 가족의 생계가 흔들리고, 지역 경제가 위축되고,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다. 이 연쇄적 붕괴를 막는 것이야말로 안전 정책의 완성이다.
사고 이전만을 관리하는 안전은 반쪽짜리다. 예방 이후를 설계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같은 사고를 반복한다. 산업재해 장애인을 다시 노동의 주체로 세우는 일은 복지가 아니라 안전 정책의 연장이다. ‘다치지 않게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친 이후에도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까지가 안전의 범위가 되어야 한다.
0과 1로 세상을 나누는 데이터의 시대다. 그러나 산업재해 이후의 삶을 0으로 방치한다면, 그 사회의 안전은 여전히 취약하다. 사고를 막지 못했을 때조차 삶을 복원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진짜 안전이다.
이제는 사고 이후의 삶을 다시 1로 복원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것이 안전을 말할 자격이며, 산업사회가 노동자에게 지는 마지막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