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입법예고된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세계유산으로부터의 거리와 상관없이 국가유산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면 종묘 인근뿐만 아니라 세계유산 주변의 제한 또는 규제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국가유산청의 판단에 따라 어디든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는 헌법상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고, 행정의 계획재량권을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이다. 국가유산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해당하는 토지주와 지역 주민들에게 재산권 침해와 행정의 불확실성도 야기하는 것이다.
이미 서울은 세계도시경쟁력지수에서 6위를 차지할 만큼 국제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K-문화 덕분에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 수도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서울이 갖는 매력과 경쟁력은 바로 600년이 넘는 역사성과 최첨단 현대도시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과 역사의 보존, 보호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서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 수준의 도시환경 개조도 필수적이다. 지킬 곳은 지키면서 필요한 곳은 적극적 개발과 정비를 통해 도심의 기능과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또한 역사적 자산의 보호를 위한 세계유산 지정이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인류 공동의 자산을 지키는 숭고한 일임은 분명하지만 유산을 품고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유산은 자랑거리가 아닌 기피의 대상이 될 것이며 보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확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유산청과 서울시, 그리고 시민 사이에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다. 충분한 의견 청취를 통해 규제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과거의 유산을 지키는 일은 곧 미래의 도시를 더 가치있게 세우는 일이며,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위해 역사자산의 보호와 주변지역과의 조화를 통한 명확한 도시계획적 원칙과 논리가 필요하다. 더이상 ‘박제된 보존’이 아닌, 주민의 삶과 함께 호흡하는 ‘지속 가능한 상생’의 모델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