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의 완성인가, 정치적 대못인가[민서홍의 도시건축]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전 06:18

[민서홍 건축가]2026년 4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임기 내 세종 집무실에 입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튿날에는 35만㎡ 부지의 조성 공사 입찰이 공고되며 첫 삽의 시간표가 정해졌다. 지난 8일 설계 당선안이 발표됐고 2027년 8월 착공과 2029년 입주라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나왔다. 수십 년간 구호로만 반복된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말이 드디어 구체적 형태를 띠는 순간이다. 그러나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논쟁의 온도는 이미 뜨겁다. 찬성과 반대, 기대와 불안이 같은 크기로 맞서는 드문 국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국회 세종의사당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당선작 ‘세종, 민의의 결’(사진=국회 사무처)
대한민국의 행정 지도는 오래전부터 기묘하게 갈라져 있다. 대부분의 중앙부처가 세종에 있지만 국정의 최종 결정을 내리는 자리는 여전히 서울에 있다. 수많은 공무원이 국회 보고나 대통령 면담을 위해 KTX를 오가는 이 구조는 국가 운영을 ‘이동하는 행정’으로 만들어왔다. 만약 대통령이 세종에 상주하게 된다면 부처 장관들과의 대면 보고가 일상화되고 정책결정의 속도와 품질이 동시에 높아질 것이다. 매주 반복되는 비효율적인 이동 행정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 자체가 실질적으로 바뀌는 일이다.

이번에 조성될 세종동 S-1 생활권의 210만㎡ 국가상징구역은 청사 밀집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이 세종호수공원 축을 따라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구상은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을 연상시킨다. 닫힌 권력의 상징이던 청와대와 달리 세종 집무실은 공원과 광장을 통합한 열린 행정의 공간을 지향한다. 연면적 약 4만㎡ 규모의 집무실과 여의도 국회의 두 배 규모로 예정된 세종의사당이 들어서면 세종은 단순한 ‘행정 도시’를 넘어 ‘민주공화국의 형상’을 구현하는 도시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공간 설계 자체가 국가 정체성을 선언하는 언어가 되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세종은 국가의 균형축에 위치한다. 어디서든 2시간 이내에 접근 가능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계선이자 과밀한 서울의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치다. 대통령의 집무실을 세종으로 옮기는 것은 수도권 집중 완화를 정책적 수사가 아닌 실제 공간의 이동으로 증명하겠다는 선언이다. 충청권의 발전을 넘어 지방분권의 상징으로서 이 전환은 행정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수십 년 묵은 고정 관념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공간 질서를 열어젖힌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의문도 존재한다. 임기 후반부에 5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것은 기성 정치의 ‘대못 박기’로 읽힐 여지가 있다. 정권이 교체될 경우 예산 확보가 불투명하다는 불안도 크다. 실제로 세종 집무실 논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약과 후퇴를 반복해왔고 이번 추진 역시 정치적 시점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법적 쟁점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근거로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이번 세종 집무실 계획은 법률상 ‘제2집무실’로 규정해 정면 충돌을 피했지만 국회의사당의 전면 이전까지 논의가 확장된다면 개헌 없이는 불가능하다. 건물을 세우기에 앞서 ‘법적 정통성’과 ‘국민적 합의’를 선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더욱 무겁게 들린다.

더구나 서울의 청와대와 여의도 국회는 즉시 기능을 멈추지 않는다. 한동안은 두 공간을 병행 운영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서울의 상징적 위상 조정 또한 피할 수 없다. 국가상징구역 건립 비용이 현재의 재정 여건과 조화를 이루는지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행정수도 완성’이 시대적 목표로서 타당하다 하더라도 그 실현의 속도와 방식에는 충분한 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재정 건전성과 국가 과제 사이의 균형은 어느 시대에나 정치의 시험지다.

궁극적으로 논쟁의 본질은 방향이 아니라 리듬의 문제다. 수도 이전의 대의에는 많은 이가 공감하지만 국가의 심장을 옮기는 일은 산업단지 조성사업처럼 속도전으로 추진할 수 없다. 이번에 공개된 설계 당선작이 단순한 조형미에 머무르지 않고 공공성과 보안, 개방성과 상징성을 하나의 공간 언어로 통합해낼 수 있을지가 첫 번째 시험대다. 세종이 새 얼굴을 갖는 일은 벽돌을 쌓기 이전에 이미 그 표정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도시가 국가의 얼굴이라면 세종은 이제 그 표정을 신중하게 그려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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