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가 보낸 신호, 우리는 왜 또 외면했나[0과 1로 보는 부동산세상]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6월 06일, 오전 08:01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는 천재(天災)가 아니다. 사고 당일 새벽, 슬라브 절단 작업 중 구조물이 2.9㎝ 주저앉았다. 신호는 현장에 있었다.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오후 2시 32분, 3명이 숨졌다.

지난 5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현장에서 긴급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장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대형 사고는 예고 없이 방문하지 않는다. 균열과 소리, 변형, 수치─전조는 먼저 도착한다. 문제는 그 신호를 ‘위험’이 아니라 ‘허용 범위’로 읽는 현장의 관성이다.

2.9㎝의 단차는 수치만 보면 작아 보인다. 그러나 수십 년간 외력을 버텨온 노후 고가 구조물의 절단면이 그만큼 내려앉았다면 그것은 계측값이 아니라 경보다. 지난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도, 2021년 광주 학동 철거 현장 붕괴도 사후에 드러난 공통점은 같았다. ‘무시된 징후’. 공정 압박과 비용 절감, 책임 회피의 구조 속에서 현장의 경보는 번번이 묵살됐다. 서소문은 그 반복의 최신판이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 현장의 긴장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재해 사망자는 여전히 매년 800명을 넘는다. 법이 있다고 사람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처벌의 사후성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본질적으로 사고가 난 뒤에 작동한다. 경영책임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이미 누군가 죽은 다음의 일이다. 새벽에 2.9㎝가 주저앉는 순간, 그 정보가 현장 관리자에서 원청·발주처까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즉각적인 작업 중단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없다면, 법은 억제력이 아니라 사후 정산 도구에 머문다. 기업 경영진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법원이 아니다. ‘내 현장에서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건설 현장 중에서도 철거공사는 구조적으로 정말 위험하다. 신축과 달리 철거는 설계 도면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수십 년간 하중을 받아온 구조물은 도면상 강도와 실제 강도가 다르다. 균열·부식·변형이 누적된 상태에서 정밀 진단 없이 절단·해체에 들어가면 예측 불가한 변수가 반드시 생긴다.

발주 구조도 문제다. 철거공사는 원가 절감 압박이 강하고 공기 단축 요구가 높다. 하도급 단계가 깊어질수록 현장 안전 책임의 귀속이 흐려진다. 이번 사고가 안전진단 중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 진단마저 형식적 절차로 전락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도 작업을 멈추는 판단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바꿔야 할 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문화다. 독자 중에 건설사, 시행사, 발주처의 경영진이 있다면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신의 현장 관리자가 지금 아주 작은 단차를 발견했다면 그것을 당신에게 보고할 수 있는가. 보고했을 때 “작업 중단”이라는 답이 돌아오는가. 아니면 “일정 확인하고 계속”이라는 압박이 먼저인가.

중대재해를 막는 것은 매뉴얼의 두께가 아니다. 현장의 작업자가 이상 신호를 발견했을 때 주저 없이 멈출 수 있는 조직 문화, 그리고 그 판단이 불이익 없이 보호받는다는 신뢰가 사람을 살린다. 경영책임자가 현장 안전을 비용 항목이 아닌 경영 리스크의 최상위로 인식하지 않는 한, 수사팀 규모와 처벌 수위가 높아져도 서소문은 반복된다.

2.9㎝는 그냥 수치가 아닌 멈추라는 신호다. 우리는 또 외면했고, 세 명을 잃었다. 다음 현장의 신호가 이번에도 외면되지 않으려면 법정이 아니라 경영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사진=알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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