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레미콘 운송 파업…정부, ‘배치플랜트’ 규제 완화 검토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6월 09일, 오후 07:11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가 8일을 기해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서 수도권 일대 약 1만 1000대의 믹서트럭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레미콘 운송노조의 파업은 지난 2022년부터 5년 동안 무려 세 차례나 반복됐다. 이에 레미콘 공급 중단 사태를 수시로 겪어온 건설업계에선 믹서트럭 운송에 의존하지 않고, 공사 현장에서 레미콘을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배치플랜트’ 설치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국책사업에 대해선 배치플랜트 인허가권을 지자체가 아닌 정부가 가져가는 방안 등을 포함해 배치플랜트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레미콘 운송노조가 전면 휴업에 돌입한 8일 경기도의 한 레미콘 업체에 믹서트럭들이 주차되어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레미콘 운송노조 수시 파업, 배치플랜트 설치 완화 필요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통상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이 필요한 경우 레미콘 공장에서 레미콘(시멘트·모래·자갈·물을 섞어 굳지 않은 상태로 배달하는 콘크리트)을 믹서트럭에 담아 운반한 후 이를 형틀에 부어 타설 작업을 하게 된다. 레미콘은 생산 후 90분 이내에 타설해야 하는데 운송이 중단되면 사실상 레미콘 공장 자체가 멈추고 공사현장에서의 타설 작업도 중단된다. 그러나 레미콘 운송노조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5년 내 네 차례 파업을 강행하면서 레미콘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수시로 일어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파업으로 인해 대형 건설사 중 12개사의 70개 현장에서 레미콘 공급 중단으로 약 5만㎥의 타설이 지연되고 있어 이를 믹서트럭 대수로 환산시 8348대에 해당하는 규모”라며 “수도권에서 진행 중인 공사현장이 1만 9000여개 임을 고려할 때 실제 피해 규모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레미콘 타설이 중단되더라도 현장인력·장비 운영비용은 고스란히 발생하는 데다 공정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부과 우려도 커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건설협회에선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수도권 내 배치플랜트 설치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국토부에 건의했다. 배치플랜트는 공사현장에 시멘트, 모래 등을 조달해 레미콘을 직접 제조하는 시설을 말한다. 공사현장에 배치플랜트를 설치하면 레미콘 기사들이 파업하더라도 레미콘을 안정적으로 조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사현장에서 배치플랜트를 설치해 운영 중인 곳은 극히 드문 상황이다. 배치플랜트 설치에 수백억원이 들기 때문에 대규모 공사에 적합하나 대형 공사에서도 배치플랜트를 운영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수도권 GTX-A 공사 일부에만 배치플랜트가 설치됐었을 정도다. SK에코플랜트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에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서 배치플랜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레미콘 운송기사들의 주 52시간 적용으로 주말과 야간 작업을 위해 레미콘 업체들이 출자해서 만든 것으로 운송기사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대에만 운용이 가능하다. 삼성물산이 건설하는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에는 배치플랜트가 없다. 대우건설은 강릉 군비행장 공사 현장에 배치플랜트를 설치했지만 수도권 공사현장에선 배치플랜트를 설치한 곳이 없다.

현대건설은 2024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 124주구 현장에 배치플랜트를 설치했다. 이는 민간 정비사업 현장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5000가구를 공급하는 대규모 공사인데다 그 일대 출퇴근 시간대 교통난이 심한데 수십 대의 레미콘 믹서트럭까지 오갈 경우 교통난이 더 심해질 것을 우려한 조치다.

◇레미콘 기사 눈치 보느라 지자체 인허가권 그때 그때 달라

배치플랜트 활성화가 매번 좌절된 배경에는 레미콘 업계 반발이 있어왔다. 레미콘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분류되어 대형 건설사의 진입이 제한적인 데다, 생존권 침해를 우려한 운송기사들의 저항이 거셌다.

작년 국토부는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을 개정해 배치플랜트로 생산·공급할 수 있는 물량을 총 레미콘 소요량의 50%로 제한하던 기준을 삭제하려고 했으나 레미콘 운송 기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했다. 일정 규모의 공공주택·고속도로·신공항 등 국책사업에 대해서만 배치플랜트에서 전량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건설업계에선 레미콘 운송노조의 파업 등을 이유로 배치플랜트 설치를 허가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파업 등으로) 레미콘 공급이 중단된 경우 건설사들이 출구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배치플랜트 설치 지침을 완화해야 한다”며 “반도체 공사 현장의 경우도 배치플랜트 설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행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에 따르면 레미콘 수요가 급증하거나 레미콘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없어 배치플랜트 설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설계도서나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에만 배치플랜트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지침에 완화된다고 해도 인허가 권한을 가진 지자체의 고무줄 잣대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4년 현대건설은 반포주공 124주구 정비사업 공사현장의 배치플랜트 설치를 교통난을 이유로 허가받았으나 이듬해 IPARK현대산업개발(당시 HDC현대산업개발)이 광운대 역세권 개발 현장에 유사한 이유로 설치를 추진했을 때는 레미콘 운송노조 반발을 의식한 지자체에 막혀 불허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레미콘 공급 중단 사태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배치플랜트를 조금 더 원활하게 설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겠다”며 “배치플랜트 설치가 지자체와 얼마나 협의가 잘 됐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인허권자를 다르게 가져가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국책사업 등의 배치플랜트 설치에 대해선 지자체가 아닌 정부가 인허가권을 가져가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얘기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