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시장은 식어도 산업은 뜨겁다…한국만 '잃어버린 시간'

재테크

뉴스1,

2026년 6월 26일, 오전 07:00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가상자산 시세가 나오고 있다. 2026.4.15 © 뉴스1 박정호 기자

"시장은 얼어붙었지만 산업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근 한 가상자산 기업 대표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현재 업계의 상황을 가장 명확하게 짚은 문장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거래량은 줄었고 투자 심리도 식었다. 하지만 산업은 정반대다. 혁신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빨라졌다.

지난해 가상자산 산업의 '핫 키워드'는 스테이블코인이었다. 실시간 결제·송금·정산을 통해 전통 금융을 대체할 인프라로 주목받으면서다. 거래소와 글로벌 은행, 핀테크 기업까지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들며 스테이블코인은 어엿한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트렌드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1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채 새로운 경쟁 무대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업계에서 가장 뜨고 있는 '탈중앙화 예측시장'이다. 폴리마켓과 칼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이슈를 거래하는 시장을 만들었다. 최근 북중미 월드컵 관련 거래량의 경우 개막 10일 만에 20억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용자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돈을 건다. 돈이 모일수록 확률은 정교해지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확률은 하나의 집단지성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 등 전통 금융사들이 예측시장을 새로운 데이터로 바라보기 시작한 배경이다.

또 다른 핵심 산업은 AI 에이전트다. AI는 은행 계좌 대신 가상자산 지갑을 만든다. 사람을 대신해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송금 등 금융 활동을 수행한다. 여행 일정을 짜고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한 뒤 비용을 결제하는 일까지 AI가 처리하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분주하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선보인 AI 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 'x402'의 누적 결제 건수는 1억 7000만 건을 넘어섰다.

크립토닷컴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도 AI 중심으로 조직과 서비스를 재편하고 있다. IT 공룡 기업 메타 역시 예측시장에 발을 들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국회와 정부가 지난해부터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약속했지만,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쟁만 이어졌다. 그나마 기대를 모았던 더불어민주당의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역시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 사이 일부 기업들은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제도가 없어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니 규제가 갖춰진 해외를 먼저 찾는다. 반대로 해외 기업들은 한국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서비스들을 선보이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기자가 업계를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제도가 필요하다"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조차 늦은 감이 있다. 제도는 더 이상 산업을 키우기 위한 정책 과제가 아니다. 세계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 조건이 됐다.

결국 처음 들었던 그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시장은 식었다. 하지만 산업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한국은 아직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다.

chsn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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