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블록체인 기반 금융시장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영국도 토큰화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며 차세대 금융 인프라 선점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한국 정부도 올해 경제성장 전략을 통해 디지털자산 육성 방침을 공식화한 만큼 제도화 로드맵을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는 실행력이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랙록·골드만삭스도 합류…英, 토큰화 금융시장 구축 시동
15일 코인데스크 등에 따르면 영국 재무부는 기관 간 금융시장에 토큰화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민관 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블랙록과 골드만삭스, HSBC, JP모건, 모건스탠리, UBS 등 54개 금융·기술 기업이 참여한다.
참여 기관들은 1년간 영국 금융시장에서 실제 토큰화 자산 활용 사례를 발굴할 예정이다. 먼저 환매조건부채권을 블록체인에서 발행·거래한다. 향후 채권과 펀드, 담보 자산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기술 실증을 넘어 토큰화 자산이 실제 금융시장에서 발행·유통되는 환경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영국 중앙은행도 오는 2028년 기존 실시간 총액결제시스템(RTGS)과 블록체인 기반 증권을 연결하는 '동기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존 오차드 공공통화금융기관포럼(OMFIF) 산하 디지털통화연구소 의장은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별점은 영국 정부가 직접 분산원장 기반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고품질 안전자산을 기반으로 기관급 자본시장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영국 정부는 토큰화를 통해 금융거래의 생산성과 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영국 재무부 도매 디지털시장 챔피언으로 임명된 크리스 울러드는 토큰화 시장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면 오는 2035년까지 영국의 연간 경제 생산이 최대 330억 파운드(약 440억 달러), 세수는 연간 140억 파운드(약 187억 달러)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국제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국가들과 같은 속도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도 웹3와 온체인 금융을 국가 성장 전략의 하나로 육성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최근 '웹X 2026' 행사 연설에서 스타트업 자금 공급을 확대하고 웹3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부의 노력과 기업·투자자 간 교류가 시너지를 내면 일본의 혁신 생태계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전임 총리 시절부터 웹3를 국가 성장 전략에 포함하고 관련 세제·규제 개편을 추진해 왔다.
일본 최대 금융그룹 중 하나인 SBI홀딩스는 솔라나 재단과 일본 온체인 금융시장 구축을 위한 전략적 협력에도 나섰다. 양사는 엔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국경 간 결제 등을 중심으로 일본 금융자산과 글로벌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연결할 계획이다.
미국도 가상자산 산업을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담은 지니어스법을 제정한 데 이어, 현재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과 증권거래위원회(SEC)·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을 구분하는 클래리티법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이르면 이번 주 클래리티법 통합 수정안을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이 처리되면 가상자산 사업자와 전통 금융기관이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규제 기준도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해당 산업을 차지하려고 한다"며 " 물론 미국이 현재 주도하고는 있지만, AI와 가상자산 분야 모두 중국이 승리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고 전했다.
美는 입법, 日은 산업 육성…韓도 '로드맵' 넘어 실행이 관건
반면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제도화가 늦어진 상태다. 정부와 국회, 업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율 제한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가상자산 2단계 법안(디지털자산기본법) 마련이 지연됐다.
글로벌 제도화 흐름이 빨라지자, 정부는 이날 발표한 '2026 경제성장 전략'에서 디지털자산 육성 방안을 공개했다. 발의가 늦어진 2단계 법안(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을 추진하고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구축한다.
또 입법과 연계해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거래를 제도권에 편입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도 지원할 예정이다.
나아가 한국은행의 기관용 CBDC와 연계한 국채 토큰화 실증 시범사업을 내년 추진할 계획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토큰화는 이미 국가 간 금융 인프라 경쟁으로 넘어갔다"며 "영국과 일본, 미국은 정부가 시장의 방향과 일정을 제시한 뒤 민간 투자를 끌어내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로드맵 발표 단계에 머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규칙과 정책 일정을 신속히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