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폭염·엘니뇨까지…곡물값 3년 만에 최고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7월 23일, 오후 07:3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곡물 가격이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폭염과 흑해에서 격화한 공격이 세계 곡물 교역을 흔드는 가운데 이란 전쟁까지 겹치면서다. 빵과 식용유부터 고기와 유제품까지 밥상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노보소피이우카 마을 인근 밀밭에서 콤바인이 밀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AFP)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 노보소피이우카 마을 인근 밀밭에서 콤바인이 밀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AFP)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주요 농산물 10개 품목의 실제 거래 가격을 따라가는 블룸버그 농산물 현물지수는 전날 399.23까지 올라 2023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7주 연속 오름세다. 앞서 지난 5월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비료와 연료 공급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로 한 차례 고점을 찍었다가 지난 6월 위험 요인이 잦아들며 물러섰지만, 전쟁과 날씨라는 새로운 변수가 겹치며 다시 오르고 있다.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밀이다. 시카고 밀 선물 가격은 이날 2년 만의 최고가를 찍었다. 직전 거래일에 4% 넘게 뛴 데 이어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의 수출 통로인 항만과 선박을 겨냥한 공격을 늘리면서 교역이 막히고 있다. 이 지역은 세계 밀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실제로 곡물 거래업체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에 실어 보낼 보리를 싣고 있던 선박이 이번 주 우크라이나 오데사항에서 피격됐다. 러시아는 방공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아조프해와 캅카스항 일대에 선박이 정박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비토르 피스토이아 라보뱅크 곡물·유지작물 선임 애널리스트는 이런 확전이 이 지역의 공급을 옥죌 수 있다고 진단했다.

데니스 보즈네센스키 호주 커먼웰스은행 농업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실물이 공급되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그는 폭염과 중동 긴장은 몇 주에 걸쳐 쌓여온 요인이라며, 흑해 사태가 “낙타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였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다시 불붙은 점도 값을 밀어 올렸다. 국제 유가가 수주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르자 옥수수와 식물성 기름처럼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작물의 수요가 함께 늘었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두 선물 가격도 이날 2년 만의 최고가를 기록했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팜유 선물은 한때 2.1%까지 올랐다. 팜유 값이 최근 경유보다 싸지면서 연료용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유럽의 폭염은 작황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옥수수 피해가 우려된다. 유럽연합(EU) 최대 농업 생산국인 프랑스는 지난 5월 말 이후 세 차례 폭염을 겪었다. 기록적인 더위가 곡물 생육의 고비에 닥치면서 작물에 부담을 줬다. 피스토이아 애널리스트는 이런 요인들이 겹쳐 곡물 값 전반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옥수수·대두 산지도 덥고 건조한 날씨에 시달렸다. 한 옵션 투자자는 전날 옥수수 값이 부셸당 6달러(약 8806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데 2000만달러(약 293억5400만원)를 걸었다. 지금보다 1달러(약 1468원) 이상 높은 수준이다. 대두는 작황 등급이 최근 나아졌지만 중국으로 나가는 물량이 늘면서 수요가 받쳐주고 있다.

기호식품 가격도 들썩인다. 엘니뇨가 돌아오면서 이달 들어 아라비카 커피와 코코아 값이 뛰어 뉴욕 시장에서 나란히 월간 기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엘니뇨는 세계 주요 코코아 산지인 서아프리카에 이상 고온과 건조한 날씨를 불러올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풍작이 이어져 주요 곡물의 재고는 아직 넉넉한 편이다. 다만 엘니뇨로 수확량이 줄 수 있다는 걱정까지 겹치면서 상승 압력이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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