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아파트도 규모가 경쟁력…'매시브 하이엔드' 부상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9월 07일, 오후 04:01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하이엔드 주거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적은 가구 수와 높은 희소성이 고급 주거의 상징이었다면 최근에는 수백~수천 가구 규모 대단지에 최상급 설계와 마감재, 호텔식 서비스까지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매시브 하이엔드’ 시장이 열린 것이다. 하이엔드의 가치가 ‘얼마나 적게 사느냐’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급 계획이 알려진 하이엔드 주거는 수백 가구가 기본이고, 많게는 2000가구에 육박하는 대단지까지 등장했다. 30가구 안팎의 고급 빌라가 하이엔드를 대표하던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공급 형태 자체가 달라졌다.

고급아파트도 규모가 경쟁력…'매시브 하이엔드' 부상
국내 하이엔드 주거는 초고층·보안에서 프라이버시와 서비스로, 다시 규모를 갖춘 고급 주거로 진화해왔다. 2000년대 초 등장한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목동 하이페리온은 초고층 설계와 조망, 출입통제 시스템 등으로 기존 아파트와 차별화했다. 이후 청담동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 고급 빌라가 등장하면서 프라이버시와 호텔식 컨시어지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소규모 주거는 한계도 뚜렷했다. 대지가 좁아 대규모 조경이나 수영장·체육시설 같은 커뮤니티를 넣기 어려웠고, 컨시어지 등 서비스 비용을 소수 가구가 부담해야 해 관리비가 높았다. 거래가 드물어 객관적인 시세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점도 약점이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한 것이 200~600가구 규모의 고급 단지다.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280가구), 갤러리아포레(230가구), 나인원한남(341가구), 한남더힐(600가구) 등이 대표적이다. 일정 수준의 희소성을 유지하면서도 넓은 조경과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확보할 수 있는 규모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에도 하이엔드 상품을 적용하고 있다. 경기 화성시 동탄의 ‘아크메르 동탄’은 최고 49층, 7개동, 1808가구 규모다. 최상위 평형에 적용하던 상품을 전 세대로 확대한다는 ‘펜트 스탠다드’를 내세웠다. 유럽 하이엔드 브랜드의 주방가구와 원목마루, 수전 등을 적용하고 전 세대 천장고를 2.5m로 설계했다. 광폭 주차공간도 1000면 이상 계획했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용산 ‘더파크사이드 서울’은 아파트 419가구와 오피스텔 775실로 구성되며 로즈우드 호텔이 운영하는 입주민 전용 커뮤니티를 갖출 예정이다. 카페와 레스토랑, 피트니스, 사우나, 수영장, 골프클럽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선다. 목동의 ‘목동윤슬자이’ 역시 651실 규모에 약 3000평의 웰니스 클럽을 계획하고 있다.

대규모 정비사업도 마찬가지다. 압구정3구역은 최고 65층, 5175가구 규모로 계획됐으며 약 4만5000평 규모의 커뮤니티 ‘클럽 압구정’을 추진한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를 재건축하는 ‘디에이치 클래스트’도 5007가구 규모로 조성되며 실내 아이스링크와 오페라하우스 등 초대형 커뮤니티가 계획돼 있다.

대단지가 하이엔드 주거의 새로운 무대가 된 배경에는 ‘규모의 경제’가 있다. 가구 수가 많으면 대규모 조경과 커뮤니티를 확보할 수 있고, 호텔식 서비스의 운영비도 여러 가구가 나눠 부담할 수 있다. 거래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가격 기준이 형성된다는 점도 자산으로서의 장점이다.

결국 하이엔드의 희소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적게 지은 집’이 희소했다면 이제는 ‘대단지이면서도 최상급 주거 경험을 제공하는 집’이 희소해지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하이엔드의 조건이 세대 내부에서 단지 전체로 넘어가고 있다”며 “규모는 단순한 가구 수가 아니라 입주민이 누리는 조경과 커뮤니티, 서비스의 크기이자 자산 가치로 연결되는 요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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