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행한 ‘주택시장 정상화’[부동산취재로그]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12일, AM 06:02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주택시장을 반드시 정상화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언입니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바로 잡겠다며 공급대책부터 대출규제, 토지거래허가제 등 굵직한 부동산 대책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정책의 방향은 ‘정상화’에 맞춰져 있는데 시장 반응이 차갑습니다. 임대사업을 하는 다주택자, 비거주 1주택자, 실거주 1주택자, 무주택자, 전월세 세입자도 모두 한숨입니다.

서울 전셋값 상승률이 12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며 매매가와 전세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에 매물현황과 시세표가 붙어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서울 전셋값 상승률이 12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며 매매가와 전세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에 매물현황과 시세표가 붙어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역대 최장’ 불장 앞둔 서울…벼랑 끝 세입자들

의도가 선하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평가가 박하기 마련입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건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무주택자들입니다. 9월 첫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83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대 최장 기록이었던 문재인 정부 당시 ‘85주 연속 상승’ 갱신이 눈앞입니다. 특히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상대적으로 아파트 매매가격이 저렴했던 지역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습니다.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내 집 마련’의 첫 관문이 계속 좁아지는 셈입니다.

“집 사는 건 포기하고 당분간 전월세로 버텨보겠다”는 선택지도 녹록지 않습니다. 전세로 살자니 시장에 물량 자체가 씨가 말랐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뜁니다. 최근 서울 전셋값 상승률이 12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가파르고, 수도권 전셋값 역시 치솟고 있습니다. 월세로 눈을 돌려봐도 매달 오르는 비용에 숨이 턱턱 막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서울 용산구의 한 공인중개사에서 중개사가 시청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서울 용산구의 한 공인중개사에서 중개사가 시청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다주택자 압박하자 눈물은 세입자가

정상화의 덫에 걸린 건 다주택 임대사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민간 임대 시장에 전월세를 공급하며 주거 안정의 한 축을 담당해 왔지만, 세제 개편과 잇따른 규제 속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최근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액을 축소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 역시 철저히 ‘실제 거주’ 중심으로 혜택을 바꿨습니다. 주택 취득 시 다주택자에게 매겨지는 최고세율 수준의 징벌적 취득세 중과가 여전한 상황에서, 주택을 그저 ‘보유’하고 ‘임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무거운 보유세 폭탄을 안게 된 것입니다. 세금 부담을 이기지 못한 임대사업자들이 하나둘 주택을 처분하거나 임대업을 포기하면서 시장의 전월세 매물은 더욱 귀해졌습니다. 다주택자들의 시장 이탈은 결국 전월세 공급 축소로 이어졌고, 그 비용과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들에게 전가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용산어린이정원을 주택공급부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자 지역 주민들이 근조화환을 보내며 집단 반발했다.(사진=노진환 기자)
용산어린이정원을 주택공급부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자 지역 주민들이 근조화환을 보내며 집단 반발했다.(사진=노진환 기자)
◇공급대책 내놓을 때마다…“안된다”

서울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자 정부는 대규모 공급대책으로 진화에 나섰습니다. 공급 발표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여 속도를 내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후보지마다 반발이 거셉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용산공원을 활용한 택지개발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나서 “절대 안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태릉CC와 염창동 개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지역 주민들은 인프라 부족과 난개발 등을 우려하며 강경한 입장입니다. 공급은 하루가 급한데 주민과 지자체의 저항을 뚫기가 요원합니다.

◇ 강남에 부는 ‘택소더스’… 아파트판 젠트리피케이션

서울이 들썩이는 와중 강남3구는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입니다. 대표적인 초고가 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인 압구정동에는 20억원에서 30억원까지 가격을 내린 급매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유는 씁쓸합니다. 바로 ‘택소더스(Taxodus·세금과 탈출의 합성어)’ 현상입니다.

정부의 노골적인 고가 주택 보유세 강화 기조가 이어지면서, 평생 모은 돈으로 강남에 집 한 채 마련해 살고 있던 은퇴 세대들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소득은 끊겼는데 보유세는 늘어나니 오랫동안 살던 집을 팔겠다고 내놓은 경우입니다. 최근 1년간 강남구에서 팔린 매물의 절반이 10년 이상 장기보유였습니다.

빈자리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갖춘 신흥 부유층이 채우고 있습니다. 낡은 상권에서 원주민이 임대료에 밀려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강남 한복판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가진 건 아파트 한 채뿐인데 세금은 계속 늘 거라 하니 어쩔 수 없이 내놓기로 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 모습(사진=연합뉴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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