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그동안 '누가 발행할 수 있느냐'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발행된 코인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송금·결제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질 경우 개인지갑이나 해외 사업자를 거쳐 이동하는 자금의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대비해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 AML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개인지갑이나 해외 사업자와 연결되는 거래에는 위험도에 따른 대응조치를 적용하는 방향이다.
그동안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발행 주체를 둘러싼 쟁점에 무게가 실렸다. 은행 중심 컨소시엄에 우선적으로 발행을 허용할지, 비은행 사업자까지 허용할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금세탁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의 활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유통 단계의 관리 필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거래소에서의 매매를 넘어 송금이나 결제 등으로 활용되면서 개인지갑이나 해외 사업자와의 거래도 늘어날 수 있다.
특히 거래소 밖으로 이동한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문제다. 은행을 통한 자금 이동은 금융회사가 거래 당사자와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지만 가상자산은 개인지갑으로 출금된 이후 다른 지갑이나 해외 사업자로 계속 이전될 수 있다. 블록체인에 거래 기록은 남지만 지갑 주소만으로 실제 거래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해외 사업자를 거칠 경우 국내 사업자가 확보할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다.
가상자산이 이미 불법 외환거래 등에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유통 관리의 중요성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가상자산을 매수해 국내 지갑으로 전송한 뒤 이를 매도해 원화로 지급하는 방식 등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이 같은 방식으로 중고차 수출대금을 주고받으며 1000억 원대 불법 외환거래를 주도한 사례가 세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FIU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과정에서 발행업자뿐 아니라 개인지갑과 해외 사업자 거래까지 관리 대상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FIU는 지난 2월 발표한 '2026년 자금세탁방지 주요 업무 수행계획'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 특정금융정보법상 금융회사 등에 준하는 AML 의무를 부과하고 개인지갑이나 해외 사업자와의 거래에는 위험기반접근에 따른 대응조치 의무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가상자산 이전거래에 대한 관리도 강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을 개정해 트래블룰의 기존 100만 원 기준금액을 폐지하고 해외 가상자산사업자와 개인지갑 거래에 대한 AML 의무를 강화했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에 대한 대응도 강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FIU는 지난 16일 발표한 '국가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확산금융 방지 전략 및 정책 운영방향'에서 가상자산 분석·추적 역량을 강화하고 가상자산 활용 범죄 등 고위험 분야에 대한 전략적 분석을 확대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여러 사업자와 개인지갑을 거쳐 이동하는 만큼 개별 사업자가 전체 유통 경로를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각 사업자가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맞춰 책임을 명확히 하고, 사업자 간 정보 공유 체계를 마련해야 자금세탁방지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