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아바스칼 할머니'의 죽음을 보며 [데스크의 눈]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4일, PM 02:49

[이데일리 정병묵 건설부동산부장] “No vamos a dejar de luchar (우리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2일(현지시간) 저녁 스페인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한 할머니의 얼굴과 ‘투쟁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향년 87세로 사망한 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 폭등한 월세를 내지 못하던 아바스칼은 9월 23일 자택에서 들것에 실린 채 강제 퇴거당했다. 2주 만에 그가 사망하자 주거난에 항의하는 시위가 마드리드를 넘어 전국으로 퍼졌다. 때마침 지난 2일 의회에서 세입자 보호 법안이 부결되면서 여론이 들끓자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11월 29일 조기총선을 결정했다.

사진=로이터
사진=로이터
임대료 폭등으로 쫓겨난 한 할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이 스페인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살인적인 임대료에 전 국민이 공감하고 분노한 것이다. 아바스칼이 70년간 살아온 집은 2018년 부동산 투자사 우르바헤스티온이 매입했다. 500유로(약 75만원)였던 월세는 이후 2650유로(397만원)로 올랐고, 1650유로(247만원)로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월 연금 1450유로(217만원)로 생활하던 노인은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주요 도시의 임대료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스페인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 스페인 비영리재단 말디타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전체 임대료는 80%, 주택 임대료는 63% 올랐다. 공급 부족이 근본 원인이었다. 스페인에는 현재 75만가구가 부족한 것으로 추산된다. 주택 부족분은 오는 2028년 100만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언젠가 우리에게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시감을 준다. 2026년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서울을 기준으로 ‘상향 평준화’가 진행 중이다. 세 부담에 강남 집값이 눌려 있지만 이를 틈타 노원·도봉·강북구 등 외곽지역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임대차 시장에선 빠른 ‘월세화’가 이어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2019년 40.4%에서 2023년 55.0%, 2025년 62.2%, 올해 8월 기준 68.5%까지 치솟았다.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 형태’인 전세가 빠르게 사라져 가면서 주거 사다리가 소멸 중이다. 무주택자는 월세에 ‘생돈’을 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는 이게 끝이 아니다. 글로벌 자본들이 한국의 빠른 월세 전환을 포착했다. 모건스탠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글로벌 투자사들은 서울 강남·강동·성북구 등 임대주택에 수백억원가량을 투자 중이다.

지금의 공급 부족이 10년 후 집값을 밀어 올리면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전세의 소멸과 함께 임대차 시장의 주류 상품이 된 월세 시장에 글로벌 투자사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한다면.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은 집을 구매할 여력이 없이 임대차 시장에 내몰린 이들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 특히 소득의 대부분을 월세로 내게 될 청년층과 노년층에는 내일이 없다.

미래를 극단적으로 어둡게 전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스페인의 주거 불안 사태를 만든 원인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공급 부족, 임대료 폭등.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빠르게 펼쳐지고 있는 변화는 아바스칼 할머니의 안타까운 죽음과 포개져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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