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가 네 번째 유예 기로에 섰다. 청와대가 추가 유예를 검토하면서 시행 연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와 정부 현장 간담회에서 제기된 과세 인프라 부족과 국내외 투자자 간 형평성 문제가 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다만 시행을 미루더라도 해외 거래자료 확보와 신종 거래의 과세 기준 정비, 손실 이월공제 도입 등은 풀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과세 시점 조정과 함께 제도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청와대는 가상자산 과세를 추가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는 전날 유예 보도와 관련해 “검토 중이며 관련해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유예 여부와 기간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여당에서도 시행 연기를 위한 법안이 발의되면서 향후 당정 논의에 관심이 쏠린다.
현행 소득세법상 가상자산 과세 시행일은 2027년 1월 1일이다.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얻은 연간 소득 중 기본공제 25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의 세율을 적용하며, 첫 신고·납부는 2028년 5월이다. 시행을 추가로 미루려면 국회에서 소득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해외·DEX 거래자료 확보 한계…국내 투자자만 부담 커지나 추가 유예 논의의 핵심에는 과세 집행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 국내 거래소는 사업자를 통해 거래자료를 확보할 수 있지만 해외거래소나 탈중앙화거래소(DEX)는 소득 파악에 한계가 있다. 같은 과세 대상 소득이라도 거래 장소에 따라 세원 포착과 과세 집행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22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박해영 국세청 차장은 해외거래소와 DEX의 거래자료를 100% 확보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앞서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일 국감에서 국내 5대 원화거래소의 자금 순유입이 전년 대비 56% 감소하고 해외 순유출은 74% 증가했다는 자료를 제시하며 해외 거래 소득 파악 문제를 지적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의 가상자산 거래정보 자동교환체계(CARF) 참여 시점을 고려해 2029년까지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과세 시스템의 준비 수준도 도마에 올랐다. 박수영 의원은 지난 13일 국감에서 국내 5대 원화거래소의 과세 시스템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임광현 국세청장은 “차질 없이 집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거래소들과 실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국세청은 통합분석시스템을 올해 말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거래소들은 지난 20일 재정경제부가 개최한 현장 간담회에서 과세자료 제출 시스템을 구축하고 검증할 충분한 준비기간을 요청했다.
스테이킹·디파이 기준 불명확…손실 이월공제도 과제 거래 방식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과세 기준이 이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국감에서 스테이킹·에어드롭·하드포크·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등의 과세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가상자산 양도·대여에 따른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스테이킹 보상이나 유동성 공급 등 다양한 거래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어떻게 분류하고 과세할지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해외거래소의 무기한선물 등 파생상품 손익이 현행 과세 범위에 포함되는지도 쟁점으로 꼽힌다.
손실 이월공제 부재 역시 보완 과제다. 현행 제도에서는 한 해 발생한 투자손실을 다음 해 이익에서 차감할 수 없다. 첫해 1000만 원을 잃고 이듬해 1000만 원을 벌었다면 누적 손익은 0원이지만, 이듬해에는 기본공제 250만 원을 제외한 750만 원에 대해 165만 원의 세금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20일 정부 간담회에서는 전문가들이 3년간 손실을 이월해 이후 양도이익과 상계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여당서도 유예 법안…반복 연기에 조세 신뢰 훼손 우려 국회에서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폐지를 위한 입법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가상자산 과세 조항을 삭제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상훈 의원은 과세 시점을 2029년으로, 정성국·김재섭 의원은 2030년으로 각각 늦추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에서도 유예 법안이 나왔다.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 간 가상자산 거래정보의 첫 교환 시점을 기준으로 과세 시행일을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해외 거래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시점에 맞춰 과세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복적인 시행 연기가 조세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반론도 나온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도입된 뒤 이미 세 차례 유예됐다.
참여연대는 25일 논평에서 청년층의 투자 비중과 해외 거래정보 확보의 어려움이 과세 전체를 미룰 충분한 근거가 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정보 수집과 국제 공조, 신고·검증 체계 강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예정대로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