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100채 중 99채 세놓으면 죄?…실거주 의무, 봉건제 후퇴”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6일, PM 04:06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집 100채를 사서 하루는 서울 반포에서, 하루는 강남에서 잔다면 지탄받겠죠. 그런데 99채를 세입자에게 임대한다면 충분한 가치를 하는 겁니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실거주 의무인가’ 정책 세미나에서 정부의 실거주 의무 규제를 이같이 비판했다.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공급 기능까지 투기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실거주 의무인가' 정책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실거주 의무인가' 정책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부의 실거주 중심 주택 규제가 임대차시장 공급을 줄이고 국민의 주거이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참석자들은 실거주 의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규제 폐지 또는 원점 재검토와 함께 주택공급 확대를 주문했다.

김 소장은 “제한된 재화인 집은 비워두면 문제지만 세입자에게 임대한다면 기능을 한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강남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금이 들겠나. 개인이 집을 사서 임대하겠다는데 인센티브를 주지 못할망정 페널티를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실거주 의무와 세금 부담으로 주택 처분을 고민하던 다주택자가 결국 세입자의 임대료를 크게 올리기로 한 상담 사례를 소개하며 “결과적으로 세입자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실거주 정책을 폐지하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결국 공급 없는 규제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거주 의무를 개인의 거주이전 자유와 연결해 비판했다. 정 교수는 “실거주 의무는 자본주의에서 중세 봉건제로 후퇴하는 것”이라며 “봉건제의 농노가 토지에 결박돼 장원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실제 거주지 이동에 제약을 받은 사례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육지에서 제주대로 진학한 대학원생이 집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학업을 그만뒀다”며 “주택 규제가 직업과 교육을 위한 이동까지 제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해외의 실거주 의무가 주택 구매 지원 등 혜택과 연계되는 사례를 거론했다. 호주의 생애 최초 주택 구매 지원이나 미국의 정부 보증 주택담보대출 등을 예로 들며 “다른 나라는 혜택을 제공하면서 실거주 의무를 부과하는데 우리는 혜택 없이 규제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부작용만 커지는 제도인 만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실거주 의무가 임대차시장에 미칠 영향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유석 한국부동산학회 이사는 “실거주와 실수요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며 “직접 거주하지 않아도 실수요일 수 있고 거주하더라도 투기적 수요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택시장은 자가와 임대차가 함께 존재해야 하는 시장”이라며 “실거주자 중심으로만 공급을 유도하면 임대차시장 공급자가 줄어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전세 공급 감소와 월세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되면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과 시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의 효과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박 이사는 2020년 서울 잠실·삼성·대치·청담 일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분석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를 인용해 허가구역 내 거래량이 비교지역보다 38.3% 감소하고 가격도 4.3% 낮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거래량이 줄고 가격도 낮아졌으나 규제지역 인근 비규제지역 가격이 상대적으로 상승하는 풍선효과도 확인됐다”며 “거래량이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정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모든 거래가 투기적 거래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좌장인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실거주 의무로 전월세 물량이 줄어든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한다”며 “주택의 양적 공급 증가 없이 소유권만 바뀌는 수평 이동으로는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가 규제를 유지한다면 주택 처분과 지역 이동을 유도할 수 있도록 양도세 부담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투기를 막겠다는 명분에만 매달린 나머지 정작 보호해야 할 실수요자와 세입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임대차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는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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