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약 63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 규모의 해킹을 당하고도 자체 재원으로 피해 자산을 보충하며 사고가 터진지 사흘 만에 출금을 재개했다. 지난해 조 단위 해킹을 당한 바이비트 역시 대규모 출금 요청을 소화하며 영업을 이어갔다. 12년 전 마운트곡스처럼 고객자산 부족이 거래소 파산으로 번지는 '코인런' 사태는 현실화하지 않은 모습이다.
거래소의 자금력과 자금 조달 능력 커진 점이 해킹 충격을 흡수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객 신뢰를 잃으면 사업 존립이 흔들리고 은행처럼 공적 구제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아, 거래소가 자체 재원으로 손실을 떠안고 고객자산을 보충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전날 해킹으로 탈취된 가상자산의 95%를 보충했다고 밝혔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10종은 고객 잔액 전액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확보했다.
나머지 유동성이 적은 가상자산은 공개시장·장외거래를 통해 매입하고 있다. 해킹으로 빠져나간 가상자산을 사들여 고객에게 돌려줄 자산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이다.
바이낸스는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63억 4000만 달러 이상의 회사 자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회사 자체 자금과 선물 보험기금 일부를 활용하고 이용자 보호기금(SAFU)도 일부 투입할 계획이다. 출금 서비스는 1일(현지시간) 비트코인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했다.
마운트곡스는 파산, 바이비트는 버텼다…차이점은 '자산 보전 능력'
대규모 해킹 이후 고객의 출금 요구를 감당한 선례는 바이비트다. 바이비트는 지난해 2월 약 15억 달러 규모의 가상자산을 탈취당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당시 북한을 배후로 지목했다.
바이비트의 사고 대응 기록에 따르면 해킹 이후 10시간 동안 35만 건이 넘는 출금 요청의 99.994%를 처리했다. 또 사고 발생 72시간 이내 단기 차입, 고래 투자자 입금, 장외 매수 등으로 고객자산의 이더리움 부족분을 모두 채웠다고 설명했다. 자체 자금뿐 아니라 업계의 유동성을 동원해 대응한 것이다.
이는 2014년 마운트곡스 사태와 대비된다. 한때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는 당시 고객 소유 75만 개와 회사 소유 10만 개 등 비트코인 85만 개가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당시 시세로 약 4억 8000만 달러(약 6411억 원) 규모였다.
회사는 일본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으나 이후 파산절차로 넘어갔다. 뒤늦게 옛 지갑에서 비트코인 20만 개를 발견했다고 밝혔지만, 거래소 붕괴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운트곡스 사태 이후 시장이 성장하며 대형 거래소의 몸집과 자금 조달 능력도 커졌다.결국 사고 이후 부족한 자산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고 고객의 반환 요구에 응하는지가 중요해졌다.
투자자 지원, 단기 차입 등 외부 자금 조달도 위기 대응에 큰 역할을 했다. 거래소 보유 재원과 함께 시장에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신뢰도 중요한 셈이다.
출금 중단 조치도 자산을 보충할 시간을 확보해 줬다. 바이낸스는 고객의 출금이 멈춘 상태에서 보안 점검과 피해 자산 보충을 진행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선 전통 금융과 달리 지갑 점검이나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등을 이유로 입출금이 일시 중단되는 일이 잦은 만큼, 출금 중단을 용인하는 투자자 분위기도 기존 금융권과는 차이가 있다.
규제 회색지대서 성장한 가상자산 거래소…고객 신뢰에 사활
또 가상자산 거래소는 전통 금융사처럼 제도가 갖춰진 상태에서 출발한 산업이 아니다. 규제 사각지(그레이존)에서 먼저 성장했고, 이후 정부가 감독과 이용자 보호 체계를 마련해 왔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 사업을 지탱한 것은 고객이 맡긴 자산을 필요할 때 돌려줄 수 있다는 신뢰다. 고객에게 손실을 넘기거나 반환을 지연하면 고객 이탈이 가속화하고 거래소의 수익 기반도 흔들릴 수 있다.
정부 구제나 공적자금 지원이 어려운 거래소 입장에선 자체 재원과 민간 자금 조달을 통해 고객 신뢰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바이낸스도 이번 해킹으로 인한 재정적 손실은 회사가 부담할 계획이다. 수사기관이 탈취 자금을 추적·동결하는 것과 별개로 고객에게 돌려줄 자산은 거래소가 먼저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고객이 맡긴 자산을 돌려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 해킹에 따른 불안이 반환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거래소의 자금력이 향상됐다고 해킹 위험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피해 규모가 보전 능력을 넘어서면 고객자산 반환과 거래소 운영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해킹을 예방하고 피해 확산을 차단하는 보안 체계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권준혁 체이널리시스코리아 지사장은 "북한 연계 가상자산 해킹은 피해 규모가 지속해서 확대되며 업계 전반의 주요 보안 위협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세일러 스트래티지(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창업자도 X(옛 트위터)를 통해 "가상자산 산업은 바이낸스 해킹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고, 보안을 강화해 더욱 회복력 있는 모습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