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정재웅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박성준 서울대 교수 연구팀, 스티브 박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과 상온에서 마이크로 스케일(머리카락보다 얇은 구조)의 미세 선폭 회로 인쇄를 하고, 온도에 따라 딱딱함과 부드러움을 조절할 수 있는 액체금속 전자잉크를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연구진 사진.(왼쪽부터) 정재웅 교수, 이시목 박사과정, (오른쪽위 별도) 이건희 부산대 교수, 박성준 서울대 교수, 스티브박 KAIST 교수.(사진=KAIST)
이 전자잉크는 상용 인쇄회로 기판(PCB) 수준의 복잡한 고해상도 다층 회로 인쇄가 가능하며, 완성된 전자기기는 온도에 반응해 딱딱한 형태를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연구팀은 기존 전자기기의 고정된 형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체온 근처에서 녹는 액체금속 갈륨에 주목했다. 갈륨은 고체 상태에서는 단단하지만 녹으면 부드러운 액체가 돼 강성 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갈륨은 물방울처럼 뭉치려는 성질(높은 표면장력)과 액체 상태에서의 불안정성 때문에 정밀한 회로 제작이 어려웠고, 제조 과정에서 원치 않는 상변화가 일어났다.
연구팀은 산성도(pH) 제어 기반 액체금속 전자 잉크 프린팅 기술을 개발하고 이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우선 마이크로 크기의 갈륨 입자를 디메틸 설폭사이드(Dimethyl Sulfoxide)라는 중성 용매에 친수성 폴리우레탄 고분자와 섞어 전자 잉크를 제작했다. 이때 용매의 중성 상태 덕분에 갈륨 입자들이 고분자 매트릭스에 골고루 분산된 안정적인 고점성 잉크가 형성돼 상온에서 고해상도 회로 인쇄를 할 수 있게 된다.
인쇄 후에는 가열 과정에서 용매가 분해되면서 산성 물질을 생성하고, 이 산성 환경에서 갈륨 입자들 표면의 산화막이 제거돼 입자들이 연결되면서 전기가 통하고 강성을 조절하는 회로가 형성된다.
연구팀은 이처럼 상온에서는 안정적인 인쇄를 하고, 완성 후에는 우수한 전기전도성과 가변강성 특성을 갖는 전자소자를 구현했다. 이후 전자잉크로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 수준의 선폭으로 회로를 인쇄하고,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상태에서 고무처럼 말랑한 상태까지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전기전도도와 강성 조절 비율을 제공했다.
또 평상시에는 딱딱한 휴대용 전자기기로 사용하다가 몸에 착용하면 부드러운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로 변환되는 가변형 다목적 기기도 개발했다. 수술 시에는 딱딱한 상태로 정밀한 조작과 뇌 삽입이 가능하지만 뇌 조직 내에서는 부드럽게 변해 조직 내 염증반응을 최소화하는 뇌 탐침도 만들었다.
정재웅 교수는 “액체금속 프린팅의 문제를 해결하고 상온에서 초정밀 고해상 회로 제작을 가능하게 했다”며 “하나의 기기가 상황에 따라 딱딱한 상태와 부드러운 상태로 자유자재로 변환돼 다목적 전자기기, 의료 기술, 로봇 분야에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지난 달 30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