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구현모 KAIST 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전 KT 대표)
구현모 KAIST 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전 KT 대표)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 도중 스마트폰을 꺼내며 한 스타트업을 소개했다.
그가 언급한 회사는 바로 ‘트릴리온랩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한국인 대표가 창업한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기업이다.
구 교수는 “지금 국내에서는 LG의 ‘엑사원’이 가장 앞서 있지만, 트릴리온랩스는 70B(70억 파라미터) 모델에서 머지않아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개발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어 “트릴리온랩스는 단순히 기술력이 뛰어난 것을 넘어 혁신의 에너지가 다르다. 빠르면 1년 반, 늦어도 2년 안에는 중국의 딥시크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지형 속에서도 후배 기업들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그의 눈빛은 단단했다. 그러나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트릴리온랩스가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추진 중인 ‘월드베스트 LLM(국가대표 LLM)’ 프로젝트에서 제외될 가능성 때문이다.
구 교수는 “전쟁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외산 AI 모델을 쓸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창업자가 한국인임에도 법인이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국가 지원에서 배제된다면 그건 국가적 손실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트릴리온랩스는 네이버 출신의 신재민 대표(32)가 2024년 설립한 회사다. 신 대표는 홍콩과기대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아마존, 뤼이드, 네이버(NAVER(035420))를 거쳐 하이퍼클로바X 개발에 핵심 역할을 맡았다. 현재는 한국어 특화 LLM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으며,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구 교수는 KT 대표 재직 시절부터 AI·딥테크 스타트업에 꾸준히 투자해온 벤처 지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상의료진단 유니콘 ‘루닛’, 비전 AI 기업 ‘수아랩’, 토종 NPU기업 ‘리벨리온’ 등에 투자를 결정했고, 현재 생성AI와 비전 AI를 융합한 ‘인텔리빅스’의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그는 “인텔리빅스는 기술뿐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매력적이다. 직접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들이야말로 한국 산업의 새 물결을 이끌 주역이라 믿는다. KT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KAIST에서 ‘AI 시대 신사업 기획과 실행’을 주제로 강의하며, 강단과 현장을 넘나들고 있다.
그는 “대기업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AI 스타트업 인재들과 교류하다 보면 저 또한 많이 배우게 된다. 결국 이들이 일으킬 혁신이 산업 전반에 얼마나 깊이 퍼지느냐가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조언도 분명했다.
구 교수는 “GPU 인프라 구축과 국가 AI컴퓨팅센터 SPC(특수목적법인) 설립은 중요한 첫걸음이다. 다만 GPU 활용료가 글로벌 클라우드 대비 높아지지 않도록 하고, 생태계 전반이 쓸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LLM 지원 사업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복수 기업을 선정해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고, 성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KT 대표 시절을 돌아보는 질문에는 담담하게 답했다.
구현모 교수는 “KT는 30년 넘게 몸담았고, 대표이사까지 지낸 고향 같은 회사다.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초고속인터넷, 스마트폰, 5G 시대의 기술 변곡점을 이끌었던 것처럼 AI 시대에도 그런 역할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구현모 대표는…
-1964년생, 서대전고 , 서울대 산업공학 학사, KAIST 경영공학 석·박사, 1987년 KT 입사, 2020년 KT 대표 취임, 2022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현 KAIST 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