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구현모 KAIST 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전 KT 대표)
구현모(62)KAIST 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전 KT 대표)는 이데일리와 만나 한국 정부가 나아가야 할 ‘AI 정부’의 방향성을 이같이 제시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전자정부를 선언하면서 업무 전산화를 통해 정부 일하는 방식을 효율화하고 동사무소에 가지 않아도 서류를 뗄 수 있게 됐다”며 “AI 정부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정부의 업무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은 변화에서 시작하는 AI 정부
구 교수는 “AI 정부 구현의 출발점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 업무 상당 부분은 현황 파악과 데이터 집계인데, 이미 민간 기업에서는 AI 도입으로 30%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이루고 있다”며 “공무원들도 AI가 매일 하는 반복적 업무를 도와주는 경험부터 시작하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예로는 “현재 동사무소에는 40명 중 약 10명이 단순 민원 안내 업무를 맡고 있는데, 이를 음성 기반 AI 키오스크로 대체할 수 있다”며 “그렇게 절감된 인력은 사회복지나 맞춤형 복지 서비스 등 꼭 필요한 분야로 재배치해 예산 증액 없이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방식이 AI 정부가 추구해야 할 본질적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쓴소리 보좌관’과 규제 AI… 정책 결정까지 혁신
AI는 단순 행정 업무를 넘어 정책 수립과 거버넌스 혁신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구 교수의 구상이다.
그는 “AI가 ‘쓴소리 보좌관’ 역할을 해 고위 정책 결정자에게 중립적이고 다양한 의견을 제공할 수 있다”며 “정책 보고서 작성 시 눈치를 보지 않는 AI 의견이 더해지면 정책 결정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정책을 결정할 순 없지만, 정부 내부에서 일종의 ‘레드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 내 ‘규제 데이터 AI’ 구축도 제안했다. 그는 “이를테면 기업이 산업단지 조성이나 복합 인허가를 추진할 때 환경부, 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규제를 확인하느라 어려움을 겪는데, 모든 법령이나 조례에 있는 규제를 학습한 AI가 1차적인 안내를 제공하면 기업의 대응 속도는 물론 정부 규제 행정도 한층 체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교육과 AI 특별법 필요
AI 정부 실현의 첫걸음으로는 공무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AI를 활용하려고 공무원들이 코딩을 배울 필요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AI가 자신의 업무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체감하고 이해하는 것”이라며 중앙공무원교육원 등에서 부서별 AI 활용 사례 중심 교육을 제안했다.
AI 발전 속도에 맞춰 AI 특별법 제정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현재 의료 데이터, 저작권 데이터 학습 등 논란이 크고 규제에는 회색인 지대가 많다”며 “기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특별법과 이를 해결할 권한을 갖춘 기구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산업 AI, 한국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열쇠
구 교수는 AI 산업화의 핵심 방향으로 산업 AI(AX)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는 수출 기반이며, 제조업과 콘텐츠 산업이 중심을 이루는 구조”라며 “AI는 이들 산업의 기존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나 고품질 맞춤형 생산이 AI 기술 도입으로 현실화되고 있다”며 “기존에는 불가능하던 생산 방식과 효율성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산업에 대해서는 “이미 배우 없이 AI 기반으로 단편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다”며 “후반 작업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솔루션도 등장하고 있어 콘텐츠 제작의 접근성과 생산성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AI는 기술 자체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며 “산업별로 최적화된 AI(버티컬 AI)가 기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I는 이미 기술을 넘어 산업과 정부 혁신의 현실적 도구가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과 실행”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AI 스타트업 생태계, ‘모험펀드’와 매칭 시스템 시급
구 교수는 “정부의 AI 투자는 단발성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생태계 전반의 구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여전히 녹록지 않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벤처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의 인수 합병(M&A) 문화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구현모 교수는 “미국은 벤처캐피탈→사모펀드(PEF)→빅테크(구글, 메타, 아마존 등)로 이어지는 명확한 투자·인수 구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벤처 생태계가 강력하게 작동한다”며 “우리의 대기업들도 외부 기술력 있는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할 필요가 있고,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AI 분야의 혁신은 벤처와 스타트업에서 주도되고 있는 만큼, 이들을 단순히 육성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산업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확장 필요성도 짚었다. 그는 “한국에는 시스템통합(SI) 기업은 많은데 정작 솔루션 기업은 드물다. 국내 시장이 작다 보니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여러 사업을 병행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환경에서 AI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해야 하며, 이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고 진단했다.
또 “AI 솔루션 기업이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면 곧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다”며 “초기부터 과감한 투자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실패 확률이 높은 분야인 만큼 정부는 위험 감수형 자금을 투입하는 ‘모험펀드’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AI 솔루션 공급 기업과 수요 기업을 연결하는 매칭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정부가 수요 기업에 ‘AI 솔루션 바우처’를 제공하면 자연스러운 시장 형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정책 설계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도 정부 과제에는 ‘해외 사례 제시’가 기본 요건처럼 붙어 있다. 하지만 AI는 따라가기보다는 앞서 나가야 할 분야”라면서 “사례 중심의 정책 기획에서 벗어나, 선제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으로 전환해야 AI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현모 대표는…
-1964년생, 서대전고 , 서울대 산업공학 학사, KAIST 경영공학 석·박사, 1987년 KT 입사, 2020년 KT 대표 취임, 2022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현 KAIST 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