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블록체인, 신뢰를 다시 쓰다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6월 19일, 오후 06:16

[박성준 | 동국대학교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신뢰’ 위에서 행동합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도, 부동산을 사는 것도, 심지어 계약서를 쓰는 일까지도 결국은 어떤 제도와 기관이 ‘그 내용을 믿을 수 있다’고 보증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신뢰의 가장 핵심에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집은 내 것이다’, ‘이 계좌의 돈은 내 것이다’, ‘이 작품은 내가 만들었다’라는 말은 모두 누군가가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줄 때에만 힘을 가집니다. 이처럼 소유권을 인정하고, 증명하고, 보증하는 것이 오늘날 법, 제도, 경제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인 뼈대인 셈입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앤드어스 대표
그런데 이 구조는 언제나 누군가를 믿는 방식으로 작동해왔습니다. 등기소, 법원, 은행, 정부 같은 기관이 그 역할을 맡았고, 우리는 그 기관을 신뢰해야만 소유권을 인정받고 거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지고, 디지털 자산처럼 보이지 않는 자산이 많아지면서 ‘누가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는가’를 정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암호화폐 기술’이나 ‘해킹이 어려운 데이터베이스’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블록체인이 가진 진짜 힘은 바로 ‘소유권을 새로운 방식으로 증명하는 기술’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누구의 허락 없이도, 누구의 중재 없이도 특정한 정보가 변경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기록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디지털 자산이 내 지갑에 있다는 사실이 블록체인에 기록되면, 전 세계 누구든 그 내용을 열람하고 확인할 수 있으며, 그 기록은 누구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기관’을 믿을 필요 없이 기록된 구조 자체를 믿을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집니다. 누가 공증해주지 않아도, 블록체인이 스스로 증명해줍니다. 누가 보관해주지 않아도, 블록체인 위에 자산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신뢰는 ‘사람이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직접 보증하는 것’으로 바뀌는 셈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닙니다. 소유권을 증명하는 방식이 바뀌는 순간, 그 위에 얹혀 있는 법과 제도, 경제 시스템까지도 함께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소유권을 등기소가 보증해주고, 은행이 거래 내역을 관리해주고, 정부가 돈의 가치를 지켜주는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블록체인이 그 역할을 나눠 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기존 사회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혁명적 전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자산 시대, 우리는 더 이상 종이 문서나 기관의 도장을 통해 소유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제 누가 무엇을 가졌는지는 블록체인 위에 기록되는 순간 증명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소유권 보증 방식은 앞으로 부동산, 금융, 콘텐츠, 인증, 교육 등 우리 생활의 수많은 영역에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신뢰 위에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전혀 다른 답을 제시하는 도구입니다. 소유권을 다시 쓰는 이 기술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블록체인이 가져온 ‘신뢰의 혁명’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새로운 문명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