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선 수십척이 줄서는 이유…바다의 1초, 생명을 살린다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7월 10일, 오후 07:15

[인천=이데일리 윤정훈 기자]“비상위치지시용 무선표지설비(EPIRB)는 선박 사고 발생 시 조난자의 위치를 자동으로 전송해 구조 및 수색을 돕는 핵심 장치로, 인명 구조에 있어 결정적인 수단입니다.”

KCA 검사관(우측)이 지난 9일 인천 남항유어선부두에 선박된 한 어선에서 EPIRB(좌측 주황색)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윤정훈 기자)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9일, 인천 남항유어선부두. 수십척의 어선들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과 인천해양경찰이 진행하는 EPIRB 합동점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맹원 KCA 경인본부장은 “EPIRB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점검이 필수”라며 “오작동으로 인한 오발신은 해양경찰 등 구조 기관의 불필요한 출동을 야기하고, 실제 조난 상황 발생 시 구조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점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선표지설비는 선박이 조난을 당했을 때 406MHz 위성조난신호와 121.5MHz 근거리 수색용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는 장치다.

일반적으로 배가 침몰하면 수심 3~5m에서 수압에 의해 수압방출장치(HRU)가 작동한다. 이 장치가 거치대를 해제하면 EPIRB 본체가 부력으로 수면위로 떠오르고, 수면 접촉 후 자동으로 구조신호와 GPS 위치정보를 발신한다.

이 신호는 다수의 위성을 통해 수신되며, 위성은 이를 지상국(LUT)에 전달하고, 다시 해경청위성조난통신소(MCC)로 전송돼 해경 등 구조기관이 신속히 출동하게 된다. 최초 장비 작동 후 위성까지 가는데는 1초가 걸리지 않고, 구조기관에도 수 분 내 전달되기 때문에 골든타임 확보에 큰 도움을 준다.

기상악화와 해양환경 변화로 해상 조난사고가 많아지면서 정부는 2019년부터 야간영업(일출 전 또는 일몰 후)을 하는 경우에는 항해용 레이더와 EPIRB(최대승선인원 13명 이상)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EPIRB가 조난 신호를 보내는 경로(사진=KCA)
이날 현장에서 만난 KCA 검사관은“EPIRB 장치의 주파수 편차, 전파의 질, 배터리 유효기간 등을 살피고 초단파(VHF) 무전기, AIS(자동선박식별장치), 레이더 등 선박에 설치 된 무선설비를 검사한다”며 “강화도부터 평택까지 경인 지역의 모든 선박과 육상의 무선설비를 검사를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KCA는 200여명의 검사관이 일평균 5건, 연간 약 2000여건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보통 낚싯배의 경우 검사 예정월에 맞춰 검사를 한다 검사 수수료는 어선은 1만1000원, 일반 낚싯배는 6만3000원이다.

해경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EPIRB를 통해 접수된 조난신호 2462건 중 실제 조난은 106건(4.3%)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2356건(95.7%)은 장비 오작동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발신은 장비를 테스트하던 도중에 오작동하거나, 장비를 감싸고 있는 거치대나 안테나가 진동·습기·염분 등 외부 요인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활성화되거나, 선박 승무원들이 장비의 올바른 사용법을 몰라서 오발신 하는 경우 등이 이유가 다양하다. EPIRB는 국제표준 기술(ITU-R, IMO)에 따라 설계된 제품이라, 성능 개선이나 민감도 조절이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인천해양경찰 관계자는 “장비가 갑판 바닥에 놓이거나 그물망, 구조물 등에 가려 조난 상황에서 신호 송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이런 부분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며 “오작동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필요한 상황에서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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