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우울증 환자, 치료제 잘 듣지 않았던 이유 찾았다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8월 19일, 오전 10:22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우울증이 단순한 신경세포 손상 때문만이 아니라 특정 신경 신호 경로의 교란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신경 신호 조절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KAIST는 허원도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이 이민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 김석휘 아주대학교의료원 병리과 교수 연구팀과 극단 선택을 한 환자의 뇌 조직의 RNA 염기 분석과 면역조직화학 분석을 통해 우울증의 새로운 분자 기전을 규명하고, 신경 회복을 유도하는 신호 경로를 조절해 항우울 효과를 회복할 수 있음을 동물모델에서 증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진 사진.(왼쪽부터)신종필 KAIST 생명과학과 박사, 허원도 교수.(사진=KAIST)
연구팀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의 ‘치아이랑(해마 안에 정보가 처음으로 들어올 때 새로운 기억 생성, 신경세포가 자라고 감정 조절과 우울증과 연관이 있는 공간)’에 주목했다.

연구팀이 2가지의 대표적인 우울증 마우스 모델로 실험한 결과, 스트레스가 유발될 때 이 부위에서 성장인자라는 신호물질을 받아서 세포 안의 성장·분화 명령을 전달하는 ‘FGFR1(Fibroblast Growth Factor Receptor 1)’이라는 신호 수용체가 늘어났다.

이후 이 수용체를 제거한 ‘조건부 녹아웃 마우스’를 활용해 해당 수용체가 제거된 상황에서는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고 우울 증상을 더 빠르게 나타낸다는 점을 규명했다. 이는 FGFR1이 정상적인 신경 조절과 스트레스 저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팀은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스트레스 저항하는 데 중요한 FGFR1을 빛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optoFGFR1 시스템’을 개발하고, FGFR1이 부족한 우울증 마우스 모델에서 이를 활성화해 항우울 효과가 회복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연구 내용 시각화 요약.(자료=KAIST)
그 결과, 노화된 우울증 마우스 모델에서는‘optoFGFR1 시스템’을 통한 FGFR1 신호 활성화에도 항우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원인을 탐색하던 중 연구팀은 ‘Numb’라는 단백질이 노화된 뇌에서 과도하게 발현돼 FGFR1의 신호전달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연구팀이 수행한 사후 인간 뇌 조직 분석에서도 나이가 든 우울증 환자에게서만 Numb 단백질의 특이적 과발현이 관찰됐다. 마우스 모델에 Numb을 억제하는 유전자 조절 도구(shRNA)를 발현시키고 동시에 FGFR1 신호를 활성화한 결과, 회복되지 않던 노화된 우울증 마우스 모델에서도 신경 발생과 행동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는 Numb 단백질이 FGFR1 신호 경로의 ‘차단자’ 역할을 하며, 해마의 항우울 기전을 막는 주요 인자임을 보여준다.

허원도 KAIST 허원도 석좌교수는 “우울증이 단순한 신경세포 손상만이 아니라 특정 신경신호 경로의 교란에 의해 발생할 수 있음을 밝혔다”며 “특히, 고령 환자에게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 이유를 분자적으로 규명하고, 향후 Numb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익스페리멘탈 앤 몰리큘라 메디슨(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에 2025년 8월 15일 자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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