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하영 기자] 평소 즐겨보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끝났다. 구미가 당기는 콘텐츠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만 OTT 구독을 끊어야겠다 싶어 앱 설정에 들어갔다. 이런, 이것저것 눌러봐도 도무지 ‘구독 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티빙·웨이브·왓챠, 뒷목 잡게 하는 불편한 해지 절차
손에 쥔 것은 오직 스마트폰 하나. 우선 티빙 앱을 열어 구독 가입부터 해봤다. 계정 로그인 상태에서 첫 화면 오른쪽 상단 ‘My’ 항목을 눌러 ‘이용권 관리’로 들어가니 ‘이용권 구독’ 선택지가 바로 떴다. 원하는 요금제를 선택했더니 앱스토어 결제 화면이 나오고, 결제 인증·승인을 거쳐 구독이 완료됐다.
이번엔 반대로 해지를 시도해봤다. 구독 화면과 달리 ‘구독 해지’는 눈에 바로 띄지 않았다. 고객센터 화면으로 넘어가서야 비로소 △다음 회차 결제 해지 △중도 해지(즉시 해지) △청약 철회(사용내역이 없을 경우 결제 취소·환불) 선택지가 제시됐다. 중도 해지나 청약 철회를 하려면 고객센터에 1대1 문의를 해야 한다는 안내에 따라, 고객센터 게시판에 이메일·연락처를 기입하고 ‘환불/해지 신청’ 문의 글을 작성했다. 그러나 ‘문의사항이 등록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끝으로, 언제 어떻게 환불 조치가 이뤄지는 건지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왓챠 앱에서는 프로필과 구독 정보 화면에서 ‘해지하기’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아이폰을 사용 중이던 기자는 또 다른 난관을 맞았다. 애플 인앱결제의 경우 애플 정책상 앱 내 해지가 불가능하니 FAQ를 참고하라는 안내가 나온 것이다. 수십 개의 FAQ 항목 중 구독 해지와 관련한 내용을 겨우 찾아, 안내대로 애플 기기에서의 구독 취소 방법을 확인했다. 다만, 결제 취소(환불)는 별도의 애플 웹페이지에서 ‘환불 요청’을 신청해야 했다. 그마저 ‘환불 결정에는 24~48시간이 소요됩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또 기다림의 시간을 맞았다.
웨이브도 마찬가지였다. ‘구독 관리’ 화면에서 해지 방법을 찾을 수는 있었지만, 환불을 신청하려면 1대1 문의 글을 남기게 했다. 결국 3곳 중 어디에서도 즉시 환불을 받지 못했다.

티빙 구독 해지 절차 캡처
이번엔 쇼핑·배달앱으로 구독 해지를 시도해봤다. 네이버 쇼핑·예약 적립금 혜택을 제공하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은, 구독 신청→멤버십 정기결제 동의→결제수단 등록까지 3단계를 거쳐 구독이 완료된다. 해지를 하려면 마이 멤버십→설정→네이버플러스 멤버십 관리 화면의 가장 하단에 ‘해지하기’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러나 해지를 택하는 순간 기나긴 설득이 시작된다. “멤버십 유지하고 매월 받는 혜택을 계속 누리세요!”, “더 많은 쿠폰 할인이 있어요!”, “매월 보너스 콘텐츠도 놓치지 마세요.” 온갖 문구를 지나 스크롤을 하염없이 내린 끝에 ‘해지하기’ 버튼을 다시 눌렀다. 이후로도 3번의 해지 의사를 추가로 확인받고서야 비로소 절차가 끝났다.
쿠팡 ‘와우 멤버십’ 역시 해지하려면 질긴 설득을 받아야 한다. 와우 멤버십 ‘해지하기’를 누르면 남은 기간 동안 혜택을 더 이용해보고 결정하라며 쿠팡플레이·로켓프레시·파격 특가 혜택 등을 더이상 받을 수 없다고 끊임없이 권유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스크롤 끝에 ‘2개월 무료 이용권’ 유혹까지 떨쳐내야 비로소 해지에 성공할 수 있다. 배달의민족 ‘배민클럽’ 역시 각종 결제·제휴 혜택과 해지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쿠폰을 들이밀며 해지 의사 확인 절차를 수차례 거듭했다.

네이버 멤버십 구독 해지 절차 캡처
반면 유튜브·넷플릭스 등 글로벌 구독 서비스들은 상대적으로 해지 절차가 간단했다. 유튜브는 ‘내 페이지’로 들어가 설정 화면에서 ‘구매 항목 및 멤버십’을 확인하면 ‘취소’ 버튼이 뜨고, 취소 안내와 함께 의사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해지가 완료됐다.
넷플릭스는 ‘나의 넷플릭스’ 화면에서 오른쪽 상단을 눌러 ‘계정’ 페이지로 진입하면 가장 하단에 ‘멤버십 해지’ 버튼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 △한 달간 일시 정지 △이번 달 이후 해지 △지금 해지하고 환불받기’ 등 3가지 선택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각각 추가 절차 없이 해지가 가능했다. 두 서비스 모두 결제를 취소하자 환불 역시 즉시 이뤄졌다.

넷플릭스 구독 해지 절차 캡처
정부는 이 같은 일부 구독 서비스 사업자들의 복잡한 해지 절차가 이용자들의 정당한 해지 권리를 방해하는 불공정행위일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5일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넷플릭스)·왓챠·네이버·쿠팡 등 구독 서비스 사업자의 전자상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법 위반 여부 판단이 어렵다며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구독 해지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다.
그러나 구독 서비스 이용자들의 불편은 현재진행형인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독경제 관련 실태조사, 해지권 기준 마련 등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복잡한 절차 없이 한 번에 해지를 신청할 수 있는 이용자 환경을 구현하는 사업자들의 자발적 노력부터 필요해 보인다. 원하는 만큼 쓰되,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게 구독 서비스의 매력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