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기자협회도 반대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독소조항이 뭘까?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2월 11일, 오후 04:57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한국기자협회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한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핵심 독소 조항이 여전히 남아 있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자협회는 11일 입장을 내고 “온라인상 허위조작정보 유통 방지라는 문제의식과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허위조작정보를 광범위하게 확대해 규제하는 구조가 그대로여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언론계가 줄곧 요구해온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배제 조항’이 빠진 점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기자협회는 “권력자의 징벌배상 배제 없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며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논의 과정에서 법안을 충분히 보완하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감시 기능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신중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들도 앞서 공동 기자 간담회를 열고 개정안에 대한 강한 우려를 쏟아낸 바 있다. 참여연대, 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디지털정의네트워크, 한국여성민우회 등 12개 단체는 “허위조작정보 규제라는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기능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며 “사회적 논의와 절차적 정당성 없이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11월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참여연대, 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등 12개 시민단체가 공동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사진=윤정훈 기자)
다음은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 기자협회·시민단체가 지적한 주요 문제점이다.

1. ‘허위’ 정의 모호…풍자·패러디까지 처벌 가능성

법안은 온라인상 ‘허위조작정보’ 유통을 규제 대상으로 삼지만, 정작 법이 말하는 ‘허위’의 범위와 기준이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지원 오픈넷 자문위원(변호사)은 “입법 취지는 타당해 보이지만, 법이 정의하는 ‘허위’의 범위가 너무 넓고 모호해 결국 대부분의 발언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풍자와 패러디를 제외한다는 단서 규정도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어설픈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즉,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풍자, 패러디, 과장 표현까지 사후에 ‘허위’로 판단될 여지가 생기면, 언론 보도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의 표현 행위도 법적 분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다.

2. 최대 5배 징벌배상 도입…표현 위축·자기검열 위험

현재 개정안은 손해액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더라도 법원이 최대 5000만원까지 손해액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고, ‘타인을 해할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면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손 위원은 “손해액 입증 없이도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해 표현 행위를 과도하게 위축시키고 자기검열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유엔 등 국제사회와 시민사회가 오래전부터 언론·표현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반대해온 근본 이유”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 역시 이 부분을 가장 큰 독소로 본다. 허위조작정보 규제라는 명분 아래 막강한 금전적 책임을 부과하면, 언론사는 권력형 비리, 재벌·대기업 비판 보도 등 고위험 이슈에서 소송 가능성을 의식한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 ‘권력자 징벌배상 배제’ 누락…권력 감시 약화 우려

언론계가 개정 과정 내내 요구해온 핵심 보호장치는 이른바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배제’ 조항이었다. 대통령·장차관·국회의원·고위 공직자·대기업 등 막강한 권한과 자원을 가진 주체는, 설령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더라도 징벌적 손해배상만큼은 막아야 언론 감시 기능이 유지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번에 과방위를 통과한 안에는 이 조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기자협회는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그대로 허용하면, 권력 비판 기사에 대한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이 난발될 수 있다”며 “결국 언론은 권력 비판을 스스로 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4. 정부 위촉 중심 심의기구…독립성·정치적 악용 논란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 구조를 문제 삼았다. 그는 “방미심위를 통해 인터넷 기사에 대한 허위 정보 심의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라며 “방미심위 산하 분쟁조정부는 위원장을 대통령이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하고 정부·여당이 과반을 위촉하고 있어 절차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포털 뉴스 편집·노출과 관련해 정치적 압박 논란이 제기돼 왔던 만큼, 동일한 구조 아래 허위조작정보 심의 권한까지 실리면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정치 팬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에 대해 집단 문제제기를 하고, 방미심위를 통해 기사 삭제·수정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다.

5. ‘법으로 막겠다’는 단순 해법…혐오표현·차별 문제와도 충돌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사회문제가 생겼을 때 입법과 처벌로 대응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혐오표현이나 차별 문제는 단일한 금지 규정으로 해결되지 않고, 다양한 층위에서의 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위조작정보 규제는 필요하지만, 이를 형사·민사 처벌 강화와 행정 심의 확대만으로 풀려고 할 경우 오히려 공론장 전체의 다양성과 비판적 토론 문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6. EU DSA 취지와 다른 ‘한국형 표현 통제법’ 우려

정부·여당은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참고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시민단체들은 “핵심 취지는 사라지고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한국형 표현통제법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허위조작정보 대응이 필요한 과제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정부가 직접 판단·통제하는 형태로 가져가는 것은 섣부른 접근”이라며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글로벌 기준의 사실확인(fact-checking) 관행을 활성화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법·행정 중심의 통제보다 언론·시민단체·플랫폼이 함께 참여하는 자율 규제·사실검증 체계를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자협회 “법사위·본회의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국기자협회는 “허위조작정보를 뿌리 뽑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법안이 다양성과 비판적 논의를 제약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며 “법안이 추구하는 목적과 달리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협회는 “국회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논의 과정에서 이번 개정안을 충분히 보완하고 재검토해 달라”며 “앞으로도 국민의 알 권리와 건강한 민주적 공론장을 지키기 위한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허위조작정보 근절과 표현의 자유 보호라는 두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과방위를 통과한 개정안이 법사위와 본회의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얼마나 손질될지에 정치권과 언론·시민사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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