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지배구조, 다시 원점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only이데일리]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2월 21일, 오후 07:00

KT 이사회의 책임론과 지배구조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데일리는 이번 KT CEO 선임 과정에 참여했으나 결과를 수용한 동시에, 과거 KT의 지배구조 운영에 직접 관여했던 인사의 시각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김태호 한성대 특임교수(전 KT IT기획실 실장)는 KT가 한때 국내 최고 수준의 지배구조를 구축했던 경험을 토대로, 사외이사의 독립성, CEO 선임 절차, 이사회 책임의 본질을 다시 원점에서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기고는 KT 지배구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차분히 짚어보는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편집자주]

[김태호 한성대 특임교수(전 KT IT기획실 실장)] KT(030200)는 한때 국내에서 가장 모범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연속으로, 증권거래소와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기업지배구조 평가에서 최우수기업에 선정됐다. 2008년에는 국내 최초로 ‘명예의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2001년 기업지배구조 평가가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이후 성공적으로 지배구조를 정착시킨 모범 사례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당시 KT와 같은 소유분산형의 기업인 포스코, KB, KT&G 등은 상호 이사회 운영 제도를 벤치마킹하며 발전시켜 나갔다. KT의 우수한 지배구조를 더욱 발전시킨 이들 기업은, 지금까지 외풍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그 시기 KT에서 지배구조를 담당하며 이사회 간사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이사회 운영의 세부사항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만큼, 지금의 KT 지배구조가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현실은 더욱 안타깝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KT 지배구조가 다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하고 싶다.

김태호 한성대 특임교수(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전 KT IT기획실실장)
첫째, 사외이사의 독립성은 지배구조의 출발점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제시하는 모범규준은, 사외이사가 경영진이나 지배주주로부터 독립해 주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감시·견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성은 형식적 요건이 아니다. 회사 또는 최대주주와의 고용·거래 관계, 경영진과의 친족·학연, 최근 임원이나 고문으로 재직한 이력, 나아가 CEO가 사실상 추천·지배해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경우까지 폭넓게 배제하는 ‘실질적 독립성’을 의미한다. 또한 사외이사는 선임 결과뿐 아니라 선임 과정 자체도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KT가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으로 평가받던 시기, 사외이사 선임은 3단계 절차로 진행됐다. 이사회와 분리된 외부 전문가 중심의 인선자문단,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그리고 이사회 심의를 거치게 했다. 지배구조에 정통한 서치펌을 통해 후보를 발굴하고, 후보자와 CEO 간 학연 등 이해관계를 철저히 검증했으며, 정치인·관료·교수 등 기업 경험이 부족한 인사는 후순위로 두었다.

독립성 기준은 매우 엄격했다. 전직 부총리 출신 후보가 과거 재직 부서에서 KT에 소규모 용역을 준 사실을 이유로 스스로 후보를 사양한 사례까지 있었다. CEO와 고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배제된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둘째, 사외이사는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 당시 KT의 사외이사들은 선임 이후, 이사협회가 주관하는 수개월간의 이사 교육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국내외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교육을 통해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 바람직한 운영 방식에 대해 학습하고 다른 기업 이사들과 교류했다. 바람직한 지배구조란, 독립적인 사외이사 후보 풀을 상시적으로 구축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검증을 거쳐 자격을 갖춘 인사를 선임하는 구조다.

셋째, CEO 선임 방식 역시 재점검이 필요하다. 최근 사장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되고 있다. 하지만, 과거 KT에서는 전직 사장과 IT 분야 전문가 등을 포함한 보다 폭넓은 구조로 운영돼 왔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경영의 연속성과 산업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평가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다. 실제로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는, CEO 선임 과정의 공정성과 합리성에 대해 외부에서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금처럼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KT 지배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2009년 취임한 CEO 시기였다. 연임을 염두에 둔 당시 CEO가 기존의 대표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 프로세스를 무력화했다. 그리고, 사외이사 선정에 직접 개입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친정부 인사들을 이사회에 포함시켰다.

이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사회가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는 빌미가 됐다. 심지어 CEO 교체의 명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난 정권에서 구현모 대표의 연임이 무산되고, 현재의 이사회가 출범한 과정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특정 사외이사의 적격성과 관련한 KT 현 이사회 논란은, 원칙의 이탈일수있다.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결국 성패는 이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훌륭한 지배구조를 위해서는, CEO를 포함한 이사회 구성원 모두와 이를 지원하는 임직원의 인식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정치적 환경이 변하더라도,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이사회 운영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2008년 당시 KT 이사들의, 기업지배구조의 최우수로 평가받던 선택은 오늘의 논란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들은 KT를 둘러싼 혼란에 대해 이사회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전원 사임 의사를 밝힌 뒤, 독립적인 후임 사외이사 선임 프로세스를 가동한 상태에서 임기 이전에 물러났다. 제도의 정당성과 회사의 안정을 개인의 임기보다 우선한 결정이었다. 지금의 KT 이사회 논란을 돌아보면, 당시 이사들의 처신은 분명한 비교 기준이 된다.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아울러, KT를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CEO 내정자 역시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전임 CEO들의 다양한 경험과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선임 과정에서 경쟁했던 모든 후보들을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자산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동시에, 탈락한 후보들 또한 개인의 아쉬움을 넘어, KT의 조기 안정을 위해 내정자를 진심으로 지원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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