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의 진짜 위험은 규제 공백 아닌 ‘규제 충돌’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2월 21일, 오후 03:54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내년 1월 22일 인공지능(AI)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규제 공백보다 더 우려해야 할 문제는 부처 간 권한 중첩과 규제 충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강정희 변호사는 지난 18일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열린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 주최 ‘미디어·AI 거버넌스 재편에 따른 법·정책 과제’ 세미나에서 “AI 기본법의 리스크는 규제가 없는 공백이 아니라, 여러 법과 기관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규제 중첩과 충돌”이라고 진단했다.

AI규제 중첩 문제. 출처=강정희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강 변호사는 기존 AI 법률 논의가 주로 데이터 학습 단계의 저작권·개인정보, 생성 결과물의 저작권·초상권, 서비스 운영 과정의 소비자 보호와 책임 문제에 집중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I가 채용, 금융, 의료, 콘텐츠, 미디어 등 전 산업에 내재화되면서 이제는 단일 법률로 규율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AI 기반 채용 시스템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동시에 고용·노동 영역의 공정성 규율 대상이 되고, 금융 AI는 금융 규제의 적용을 받는다. 콘텐츠·미디어 분야 AI 역시 방송통신 관련 기관의 감독을 받는 등 다수의 개별 법률과 기관이 동시에 개입하는 상황이 현실화됐다는 설명이다.

강 변호사는 “AI 기본법은 다른 법률에 특별 규정이 있으면 그 법을 따르도록 하고 있지만, 수범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기관의 기준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지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결국 가장 보수적인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어 컴플라이언스 비용과 법적 리스크가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AI 기본법의 개념 정의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꼽았다. ‘인공지능’과 ‘인공지능 시스템’ 개념이 혼용되고, 규제 대상인 ‘제공자’의 범위가 모호해 AI 개발자, 이용 사업자, 이용자의 구분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처=강정희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이로 인해 기업들이 스스로 자신의 법적 지위를 판단하기 어려운 회색지대가 발생하고, 사후적으로 규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영향 AI 규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내놨다. 한국 AI 기본법은 생명·신체·기본권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일괄적으로 고영향 AI로 규정하지만, 위험 수준에 따른 세분화된 차등 규율이 부족해 형식적 준수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위험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규율하는 EU AI법과 대비되는 부분이라고 짚었다.

고영향 AI 범위 문제. 출처=강정희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강 변호사는 EU가 최근 ‘옴니버스 규제’를 통해 AI 규제 시행 시기를 연기하고 규범 간 조정을 시도한 사례를 언급하며, “EU조차 집행 준비 부족과 기업 부담을 이유로 규제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의 취지가 혁신 촉진이라면, 실제 집행 가능성과 제도 간 정합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AI 기본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핵심은 부처 간 조정 메커니즘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조정 장치 없는 다중 규제는 오히려 AI 산업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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