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앞당긴 구조조정, 20대는 덜 뽑히고 50대는 밀려난다[김현아의 IT세상읽기]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2월 21일, 오후 05:53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사람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시점이 앞당겨졌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요즘 기업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최근 기업들의 인력 조정은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광범위하다. 비용 절감이나 일시적 구조조정이라는 기존의 설명을 넘어, 고용 판단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 변화의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기업의 컨트롤타워 조직에서 나타났다. SK그룹의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근 인력을 약 30% 줄였다. 한때 100명 안팎이던 조직은 70명 수준으로 축소됐고, 계열사로 내려간 인원만 30여 명에 달한다. 비슷한 모델을 채택했던 카카오의 CA협의체 역시 축소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전략과 기획, 조정 기능을 담당하던 중앙 조직이 빠르게 슬림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차원의 구조조정과는 다르다. AI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확산되면서, 과거처럼 많은 인력을 투입해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반복하며 내부 조율을 하는 방식 자체가 효율적이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회의를 줄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회의를 만들어내던 기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에 가깝다.

이러한 판단 변화는 먼저 40·50대 인력 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최대 4년 치 연봉, 금액으로는 3억~4억 원 수준의 위로금을 제시하며 1980년대생 임원과 보직 해임된 팀장급 인력을 정리했다. LG전자, LG유플러스,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전반에서도 희망퇴직은 사실상 상시화됐다.

유통·서비스업에서는 현대면세점과 현대백화점, CJ CGV까지 구조조정 대열에 합류했고, 게임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가 12년 만에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삼성전자 역시 매년 연말이면 퇴임 임원 소식이 이어진다. 점포 축소가 진행 중인 금융권에서는 40대 퇴직자도 적지 않다. 산업과 직무를 가리지 않고, 중간 관리자층이 빠르게 얇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용 구조의 역설도 드러난다. 계약직인 임원보다, 부장급·매니저급 직원들이 오히려 더 많은 위로금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법상 보호와 보상 구조 때문이다. 짧은 임원 생활을 선택하기보다 직원 신분으로 ‘가늘고 길게’ 근무하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이유다. 조직이 얇아질수록 직함의 명예보다 고용 안정성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AI는 일자리를 단번에 없애는 기술은 아니다. 다만 기업이 “이제는 사람이 없어도 된다”고 판단하는 시점을 분명히 앞당기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충격은 중장년층에만 머물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 근본적인 영향을 받는 쪽은 20대다. 신입 채용은 줄어들고, 경력직이나 프로젝트 단위 계약, 외주와 자동화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문서 작성, 기획 보조, 고객 응대, 데이터 정리 등 초급·중급 업무의 진입 장벽을 빠르게 허물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신입을 뽑아 시간을 들여 키울 유인이 줄어든 셈이다. 언론계나 법조계에서 수습기자와 어소시에이트 변호사 채용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학 졸업생 취업률을 둘러싼 불안이 커지는 이유다. 이미 만만치 않은 취업 문턱은 AI 전환이 본격화될수록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20대는 덜 뽑히고, 40대와 50대는 밀려나는 고용 구조가 동시에 굳어질 위험에 놓여 있다.

그동안 정책 논의는 ‘경기 회복 시 고용 반등’을 전제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AI는 다르게 작동한다. 한 번 자동화된 프로세스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기업이 “사람 없이도 된다”고 판단한 영역은, 호황이 와도 채용으로 복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AI는 해고를 명령하는 기술이 아니라, 고용 판단의 기준을 바꾸는 기술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시 구조조정이며, 연령 경계의 붕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일의 구조가 바뀌는 속도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다. 기업은 이미 AI를 기준으로 채용과 평가 방식을 다시 설계하고 있지만, 정부와 교육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매년 신년이 되면 기업들을 불러 고용 숫자를 늘리라고 주문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일이 사라지고, 어떤 역할이 새로 생기는지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진단은 청년과 중장년을 나눠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같은 노동시장 안에서 연결해 설계하는 접근이어야 한다. AI가 앞당긴 일자리 변화는 세대별로 따로 오지 않았다. 한꺼번에, 동시에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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