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단순히 ‘유능한 개발자’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AI를 전공하고 관련 논문이 세계 유수의 저널에 수시로 실릴 만큼 학계와 업계에서 동시에 촉망받던, 우리에겐 ‘국가 대표급’ 인재였다.
박용후/관점디자이너
결국 행정심판과 재판을 통해 ‘완전 무죄’를 선고받으며 결백을 증명했지만, 이미 그의 영혼은 갈기갈기 찢긴 상태였다.
정당한 혁신의 대가가 ‘범죄자 취급’이라면 더 이상 이 땅에서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는 사실상 국가적 외면 속에 ‘직업적 망명’을 선택했다.
무너진 혁신의 생태계, 꼬리를 무는 이탈
비극은 한 개인의 떠남으로 끝나지 않았다. A씨가 떠나자 그를 믿고 따르던 부문장을 비롯해 핵심 인력 20여 명이 차례로 회사를 떠났다. 한 명의 천재적 인재를 잃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AI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던 거대한 생태계가 통째로 무너진 셈이다. 회사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혁신이 멈춘 공허한 사무실뿐이다.
이것은 비단 한 기업의 불행이 아니다. 후배는 고백했다. 사업을 하며 가장 힘든 것은 기술 개발이나 시장 개척이 아니라, 특정 이권 단체의 간섭과 그들의 목소리를 등에 업은 정치권의 노골적인 압박이라고 말이다.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기존 권익을 침해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소송과 조사의 늪에 빠지는 현실은 경영자를 사투의 장으로 내몬다. 대한민국에서 혁신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거대한 정치적 풍랑 속에 맨몸으로 던져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서글픈 확신이 든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혁신의 전쟁터
이공계 출신 창업자와 개발자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세상의 원리를 논리와 데이터로 이해하듯, 사업 역시 정해진 법과 규칙률에 따라 정직하게 운영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는 ‘순수한 상식’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험악하니 몸을 사리라는 조언을 건네면 그들은 늘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나요? 법을 어긴 것도 없는데요.”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논리’는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수사기관의 칼날이 춤을 추고, 특정 이권 단체의 압력이 법보다 우선시되는 현실을 보며 그들은 깊은 인지부조화에 빠진다. 혁신을 꿈꾸던 열정은 어느새 ‘어떻게 하면 이 지옥 같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존 본능으로 대체된다.
얼마 전 만난 한 중견기업 회장의 사례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평생 일궈온 회사를 미국계 사모펀드(PE)에 매각한 그는 사업 지속 의지를 꺾은 결정적 원인으로 정치권을 등에 업은 사정기관의 지속적인 압박을 꼽았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해야 할 경영자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회사를 넘겨야만 했던 이유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정치적 피로감 때문이었다고 했다.
미래 성장의 목줄을 잡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잘못을 저지른 기업이 있다면 사정기관이 이를 바로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칼날’이 정의가 아닌 ‘정치적 이슈’나 ‘표 장사’를 위해 휘둘러질 때 발생한다. 정치인들이 눈앞의 표를 얻기 위해 혁신 기업의 발목을 잡고, 이권 단체의 압력에 굴복해 미래를 여는 사업의 숨통을 조이는 행위는 명백한 ‘국가적 자해 행위’다.
인재가 떠나는 나라는 성장이 멈춘다. 미국에서 AI를 공부한 인재가 다시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고, 그 여파로 수십 명의 전문가가 이탈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그들이 떠난 자리는 곧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이 상실된 자리다.
정치의 역할은 ‘족쇄’가 아닌 ‘바람’이어야 한다.
정치와 사정기관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억울한 기업의 목줄을 죄는 행위는, 결국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목줄을 죄는 것과 같다. 기업가와 개발자가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하지만 현실은 국가가 그들의 의지를 꺾고 밖으로 내몰고 있다.
혁신은 규제와 압박이 아닌 자유와 신뢰 속에서 피어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인재들의 ‘직업적 망명’을 방치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과거의 영광뿐일 것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깨달아야 한다. 당신들이 잡고 있는 그 목줄이 혁신의 목줄이자, 바로 대한민국 미래의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기업인이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세계적인 개발자가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는 나라. 그런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외치는 ‘IT 강국’이라는 구호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