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기 논란 그 후, 독자 AI는 ‘설계’로 답해야 [김현아의 IT세상읽기]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1월 07일, 오후 05:32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글로벌 AI 시장에서 앞서가는 모델들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왜 이 모델이 세상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고, 그 답을 설계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말로만 ‘좋다’가 아니라, 구조와 성능으로 “이렇게 만들었더니 이런 효과가 났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반면 한국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여러 서비스의 바탕이 되는 대규모 기본 모델)’ 논의에는 최근 ‘베끼기 논란’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누가 누구를 닮았는지, 어디까지가 참고이고 어디부터가 복제인지의 공방은 감정싸움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독자성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독자성으로 인정할지,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처음부터 만들었다(프롬 스크래치)”는 말만으로 설득이 끝나지 않습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모델들은 대체로 ‘문제 정의 → 설계 선택 → 그 선택의 효과’가 기술 문서나 구조에서 읽힙니다. 왜 이런 방식이 필요한지, 그 결과 무엇이 좋아졌는지까지 연결해 설명합니다.

한국도 1단계에서 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1차 발표회에서 LG AI연구원, 업스테이지, 네이버클라우드, NC AI, SK텔레콤 등 5개 팀이 약 4개월간의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단계평가를 통해 성과와 향후 계획을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도 대형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쌓았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과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등 참석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만 아쉬움도 남습니다. 공개된 발표와 자료만 놓고 보면, 발표의 중심이 ‘점수(벤치마크)’에 더 기울어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점수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점수만으로는 “무엇을 새로 만들었나”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단순히 ‘성능이 올랐다’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입니다.

해외 모델들이 반복해서 보여준 건 바로 이 ‘선택의 흔적’입니다. 어떤 곳은 계산을 줄이는 쪽을, 어떤 곳은 학습 목표를 바꾸는 쪽을, 또 어떤 곳은 구조를 압축하는 쪽을 택합니다. 표현은 달라도 공통점은 같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이렇게 풀겠다”는 선택이 구조에 남아 있고, 그 선택이 설명 가능한 형태로 제시된다는 점입니다.

국내의 일부 업체 기술 문서에서는 “검증된 모델 구조를 활용해 위험을 줄였다”는 취지의 표현이 보이기도 합니다. 단기간에 실패 확률을 낮추는 전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지원 사업에서 독자가 알고 싶은 건 그 다음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새로 했나”, “어떤 생각을 어떤 설계로 바꿨나”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으면, 바깥에서는 결국 ‘조합’으로 읽기 쉽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라면 더 그렇습니다. 벤치마크 점수 경쟁을 넘어 ‘구조적 차별성’을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방향은 세 가지를 고려했으면 합니다.

첫째,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새로운 설계’를 핵심 지표로 올려야 합니다. 단순 성능 점수만이 아니라, 문제 정의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설계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이 어떤 장점과 맞바꿈을 낳았는지까지 평가해야 합니다. 외부가 납득할 만큼 공개할 건 공개하는 원칙도 필요합니다. 최소한 비교·검증이 가능한 수준의 정보는 제시돼야 합니다.

둘째, 공공·국방 등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에 쓰려면 ‘통제권’이 분명해야 합니다. 오픈소스를 활용했더라도 결국 우리가 스스로 고치고 개선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외부에 손 벌리지 않고 운영과 진화를 주도할 수 있느냐가 독자성의 핵심입니다. 독자성은 “처음부터 만들었나”보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나”와 맞닿아 있습니다.

셋째, 단계 탈락 중심의 서바이벌 구조에서 다소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 연구는 실패를 품고 갑니다. 일정에 쫓기면 ‘안전한 조합’만 반복되기 쉽고, 그러면 설계 경쟁은 작아집니다. 의미 있는 성과를 낸 팀이 연구를 이어갈 트랙과 인프라를 마련해주는 방식이 병행돼야 합니다.

“한국어에 강한 대형 모델”을 넘어, 글로벌 생태계가 채택할 만한 설계도를 남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단계가 대형 모델을 만들어 본 경험을 쌓는 출발점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설계 경쟁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일부 업체를 둘러싼 베끼기 논란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논란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려는가”를 먼저 정하고, 그 답을 구조로 보여주는 것. 그때 비로소 ‘독자’라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도의 이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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