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잔혹사⑤ 문어발 기업인가, 데이터 시대의 유기체인가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2월 08일, 오후 04:16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카카오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는 ‘문어발 확장’이다. 계열사 숫자는 강한 인상을 만든다.

하지만 기업을 평가할 때 숫자는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특히 플랫폼 기업을 제조업 시대의 잣대로만 재단하면, 숫자는 설명 도구가 아니라 오해의 증폭기가 되기 쉽다. 문제의 핵심은 ‘계열사가 많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숫자를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있다.

박용후/관점디자이너
숫자는 흔들린다…‘계열사 수’만으로 기업을 단정할 수 있나

우선 “카카오 계열사가 몇 개냐”를 보면 공정거래위원회 기준 카카오 소속회사 수는 시점에 따라 크게 변동해 왔다. 예컨대 2023년 5월 147개에서 2024년 5월 128개, 2025년 11월 98개로 내려오는 식이다. 숫자 하나로 기업의 성격을 단정하는 순간, 논의는 출발부터 흔들린다.

제조업 시대의 기업이 ‘확장’을 통해 동일한 제품과 생산능력을 밀어붙이며 시장을 넓혔다면, 플랫폼 시대의 기업은 서비스별 규제·책임·리스크 단위가 달라지면서 조직이 ‘분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같은 ‘회사 수 증가’라도 작동 원리는 다르다. 카카오를 둘러싼 인식의 혼선은 우리가 여전히 ‘공장 중심·단일 법인 중심’의 사고로,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기업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구조적 차이를 무시한 채 숫자만 떼어 놓고 보면, 카카오는 문어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 사옥. 출처=카카오
알파벳 전환의 메시지…‘법인 분리’는 혁신을 위한 구조일 수도

먼저 글로벌 사례를 보자. 구글은 2015년 지주회사 체제인 알파벳으로 전환하며 의도적으로 법인 수를 늘렸다. 검색이라는 본업과 자율주행, 생명공학, 인공지능 같은 고위험·고불확실 사업을 분리하지 않으면 혁신이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유튜브, 딥마인드 역시 인수를 통해 편입됐고, 독립 법인 또는 준독립 구조로 운영된다. 이는 방만함의 결과라기보다 혁신 지속을 위한 구조에 가깝다.

카카오 역시 메신저라는 하나의 중력장을 중심으로 금융, 모빌리티, 콘텐츠, 커머스처럼 규제 체계와 책임 구조가 전혀 다른 사업들이 연결돼 있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가 동일 법인일 수 없는 이유도 금산분리, 금융소비자 보호, 리스크 관리라는 제도적 요구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에서 법인 수의 증가는 ‘확장 욕망’이 아니라 책임 분리와 전문 경영을 위한 필연적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쟁점은 숫자가 아니라 작동 방식

그럼에도 정치권과 일부 여론은 카카오의 사업 확장을 ‘골목상권 침해’ 프레임으로 단순화해왔다. 물론 플랫폼 수수료 구조, 노출 알고리즘의 영향력, 카카오톡과의 결합이 시장 지배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다만 논의의 출발점이 ‘숫자’와 ‘감정’에 머물면 결론이 생산적이기 어렵다. 플랫폼은 직접 미용실을 운영하거나 꽃을 생산·배달원을 고용하지 않는다. 본질은 오프라인 영세 사업자가 디지털 환경에서 고객을 만날 수 있도록 접속 경로를 제공하는 인프라 사업이라는 점이다.

M&A의 순기능과 숙제…‘인수 자체’가 아니라 ‘이후 운영’이 핵심

카카오 계열사 상당수가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카카오라는 대규모 플랫폼이 적극적인 인수자로 등장하면서 창업→성장→회수→재도전의 선순환이 형성된 측면도 있다. 다만 모든 인수가 성공적이었는지, 편입 이후 혁신과 독립성이 유지됐는지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인수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이후의 운영 방식과 경쟁 환경이다.

결국 카카오 논쟁의 본질은 ‘계열사가 몇 개인가’라는 형태가 아니라 행위다. 필요한 것은 법인 수를 줄이게 만드는 형식 규제라기보다, 플랫폼 권력이 작동하는 지점에 맞춘 행위 규율이다.

예컨대 자기우대, 결합판매, 수수료·노출 기준의 투명성, 데이터 이용의 경계, 이해상충 관리 같은 직접 레버가 더 중요하다.

카카오의 사회적 책임, 시장 영향력, 거버넌스 투명성은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논의의 출발점이 ‘문어발’이라는 낡은 숫자 프레임에 머문다면 규제는 본질을 비껴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줄이는 규제가 아니라, 숫자 뒤에 숨어 있는 구조를 읽어내는 관점의 전환이다. 관점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혁신의 실체가 아니라 숫자의 그림자와 계속 싸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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