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예비타당성조사 폐지 이후 대규모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투자·관리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대형 R&D 사전점검체계 전면 개편 방안’이 12일 ‘제5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고 이날 밝혔다.
홍순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성과평가정책국장(오른쪽)과 김홍주 사무관(왼쪽)이 이번 개편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예타는 대규모 국가 인프라 사업의 추진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해 국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999년에 도입한 제도로 2008년부터 R&D 사업에도 적용됐다. 그러나 R&D 분야에서는 평균 2년 이상이 소요돼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혁신기술을 적시에 확보하는 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크고 성과 예측이 어려운 연구개발사업에 경제성 입증도 요구해 연구자들이 연구보다 행정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과학기술 5대 강국 실현을 위한 시스템 혁신’을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R&D 예타 폐지와 대형 R&D 투자·관리 체계 혁신’을 핵심 과제로 추진했다. 이에 지난 1월 29일 ‘과학기술기본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2월 10일부터 시행되면서 우리나라 대형 R&D 투자 심의체계는 2008년 이후 18년 만에 국가재정법 기반 예타에서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한 R&D 맞춤형 사전점검제도로 전환됐다.
◇AI, 양자 등 R&D 사업 신속성 더해
이번 개편안에 따르면 사전점검 대상인 대형 R&D의 기준이 기존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된다. 글로벌 기술 경쟁 심화에 따른 대규모 집중 투자 추세와 1999년 제도 도입 이후의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한 조치다. 모든 R&D 사업을 같은 방식과 절차로 평가했던 예타와 달리 후속 제도는 사업 성격에 따라 ‘연구형’과 ‘구축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점검 체계를 적용한다.
우선 연구형 R&D는 AI, 양자, 바이오 등 전략기술 개발, 기술사업화, 인력양성 등 연구개발 중심의 사업으로 신속성과 유연성 확보가 중요하다. 1000억원 이상 신규 연구형 R&D 사업에 대해서는 예산심의 전에 사업계획의 완성도를 점검하기 위한 ‘사업기획점검’이 진행된다.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짧은 예산 심의 기간을 보완하기 위한 사전 검토 절차로 예산 요구 전년도 11월부터 약 5개월간 진행된다. 점검 결과는 3월 중 각 부처에 통보돼 신규 사업계획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예산 요구안 편성에 활용된다.
유사 기술 분야와 성격별 ‘사업군’ 단위로 점검해 사업 간 우선순위 조정과 재원 배분의 효율성도 높인다. 개별 사업 중심이었던 기존 예타 대비 예산 심의와의 연계성도 강화된다.
◇중이온가속기 등 대형시설 구축 실패 사례 보완
구축형 R&D는 대규모 연구시설·장비 구축, 연구단지 조성, 우주분야 체계개발 사업 등을 포함한다. 사업 관리가 어렵고, 실패할 경우 매몰비용이 크며, 사업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인 운영비가 필요해 신중한 투자 결정과 관리가 중요한 분야다. 1000억원 이상 규모의 구축형 R&D 사업에는 사업추진심사 등 전주기 심사제도를 도입해 사업 기획부터 완료까지 전 과정에 대해 관리한다.
사업추진심사는 구축형 R&D 사업이 연구 현장에서의 ‘과학·기술적 필요성’에 따라 추진되도록 실제 수요를 검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각 부처는 학회나 협회 등 민간 중심으로 협의·도출된 수요를 바탕으로 사업을 기획해야 한다. 협의 절차는 올해 시범운영한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심사 요건에 적용될 예정이다.
사업추진심사는 기존 예타처럼 사업의 가부를 결정하기 위한 점검이 아니라, 사업이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기술 확보 여부, 사업관리 계획 등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한다. 항목별 과락제를 도입해 사업추진 과정에서 리스크가 해소됐을 때 사업 추진이 가능한 구조이다.
특히, 기술개발이 선행돼야 하는 첨단 연구시설, 우주발사체 등의 체계개발사업은 총 사업규모를 확정하지 않고 기술개발이나 설계 등에 대한 예산만 먼저 확정해 추진하게 해 고난도 사업이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리스크도 줄이도록 했다.
이 밖에 사업들이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추진되는 경우에는 입지를 사전에 결정하지 않고 심사 신청 시 입지 후보지와 선정계획만을 제출토록 했다. 과학적·기술적 가능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지가 먼저 결정돼 시간에 쫓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홍순정 과기정통부 성과평가정책국장은 “과학비즈니스벨트부터 시작해 입지부터 결정한뒤 적정성을 검토했던 과거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 사업의 경우 사업비가 점검 과정에서 올랐고, 지금도 추가 R&D를 하고 있지만 완공이 안됐다”며 “단계별 사업 추진을 통해 예산 낭비와 위험부담은 줄이고, 단계별로 심사를 통해 총사업비를 유연하게 반영해줄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사업추진심사를 통과한 사업은 설계가 완료되면 설계적합성심사도 거쳐야 한다. 심사 대상사업은 기술개발이나 설계포함 여부에 따라 사업추진심사 시 결정된다. 설계적합성심사는 설계 완성도뿐만 아니라 기술 확보 상태, 세부 공정 계획 등 시공 가능 여부와 입지 적정성 등을 종합 점검한다. 설계적합성심사를 통해 연구시설·장비 구축, 건설 공사 등 시공에 필요한 사업비가 결정되며, 이 단계에서 전체 사업 규모와 부지가 확정된다. 다만, 기술 확보 상태가 미흡하거나 사업을 계속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사업 중단도 할 수 있다.
또 주요계획변경심사를 통해 사업이 진행되면서 물가상승, 환율변동 또는 적용기술의 변경 등 대내외 환경 변화로 사업 계획 변경의 적정성도 검토하도록 했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행정 규칙 제정도 빠르게 진행하고, 현장 설명회를 통해 새로운 제도가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18년 만에 예타 폐지에 이은 R&D 투자 심의 체계의 전면 개편은 대형 R&D의 신속성과 재정 투자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역대 과학기술 정책 중 가장 중요한 성과”라며 “이번 방안을 통해 대한민국은 글로벌 수준의 체계적인 R&D 투자·관리 시스템을 갖추게 돼 기술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국으로 도약할 초석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