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만든 내 나라 지도…세금도 안내는 美기업에 뺏길 판

IT/과학

뉴스1,

2026년 2월 26일, 오전 05:30

17일 오후 수원시 국토지리정보원 내 대동여지도와 서울 강남구 구글코리아 본사. (레이어 합성)2016.11.17 © 뉴스1 이재명,최현규 기자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압박 영향이 시급하게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사안은 구글과 애플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이다. 정부가 지난해 연이어 유보한 양사의 요청에 이번 주 내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밀 지도는 보안시설과 세부 지리 정보가 함축된 '안보 집합체'다. 특히 세계 주요국가들이 2만5000대 1 수준의 축적정보를 담은 지도 데이터를 보유한 반면 우리 정부는 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인 '5000대 1' 고정밀 지도를 보유한 탓에 구글과 애플은 이 5000대 1 지도 데이터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미국은 우리 정부의 지도 반출 불허 결정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 주장하며 산업계 이슈에 정치적 압력을 더하고 있다. 지도 데이터 자체보다는 이를 빌미로 대미 관세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여야정과 산학계에서는 반출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1차적으로는 고정밀 지도에 담긴 안보ㆍ방위 정보가 해외 기업에 고스란히 유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금으로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고정밀 지도를 법인세 한푼 내지 않고 한국법에 어떤 규율도 받지 않는 미국 기업에 조건없이 내 줄 경우 자율주행과 AI 등에 고품질 학습 데이터를 무상으로 제공해 경재유격차만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국내법을 준수하며 의무를 다하는 국내 사업자를 향한 역차별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지도 반출 결정 코앞으로…美 관세 영향 주목
26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번 주 내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관계부처로 구성한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 관계자는 "협의체 개최 날짜 등 일정은 관계 부처 협의 후 정해질 예정"이라며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구글에 보안시설 블러(가림)처리와 좌표 표시 제한 등 조건 일부를 수용해 서류를 보완하라며 반출 결정을 세 번째로 연기했고, 구글은 이달 5일 보완서류를 제출했다. 애플 역시 지난해 12월 결정이 유보돼 올해 최종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지도 반출이 '역차별' 될 수도…데이터센터·법인세가 먼저
미국은 자국 기업을 차별하지 말라는 논리로 고정밀 지도 반출 결정에 압박을 가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한미 양국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통해 위치·개인정보 등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한다고 합의했다.

문제는 구글·애플이 국민 혈세로 구축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할지 여부다. 데이터센터 설치나 법인세 납부 등 대가 없이 사실상 무상으로 지도를 반출하면 오히려 국내 기업에 역차별로 작용한다.

이에 정부는 구글이 보완서류 제출 전 수용하겠다고 밝힌 '보안시설 가림처리'와 '좌표 표시 제한' 외에도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를 지도 반출 조건으로 제시한 상황이다.

구글은 아직 공식적으로 데이터센터 설치 조건을 수용하지 않았다. 애플은 지난해 반출 신청서에 데이터 저장소를 한국·미국·싱가포르 데이터센터 3곳으로 제한한다고 명시했지만, 국내법의 적용을 받도록 부지를 매입해 데이터센터를 구축할지 임대 형태로 운영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데이터센터를 두지 않으면 정보 가공 위치가 국내로 제한되지 않아 민감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고, 한국 법인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익에 상응하는 법인세를 회피할 여지가 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국회 국정감사 등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구글코리아가 지난 2024년 매출에 대해 납부한 법인세는 172억 원이다. 구글코리아는 국내에서 386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보고했는데 실제로는 유튜브와 구글 플레이스토어까지 합쳐 수조 원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기간 네이버나 카카오가 납부한 법인세는 각각 3902억원, 1590억원이다. 구글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납부한 법인세의 4%수준만 세금으로 납부했다.

이같은 구글코리아의 조세회피 의혹은 매년 국정감사의 단골 소재기도 하다. 국회에서 정확한 한국 내 매출 규모와 영업이익 등을 질의하면 '본사 지침' 이라는 이유로 단 한 번도 투명하게 공개한 적이 없다. 또 세금 회피 의혹에 대한 질문을 하면 "당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의 관할을 받는 미국 기업"이라며 오만한 태도로 한국에서의 납세 의무를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이번 고정밀 지도 반출과 관련해 데이터센터 국내 구축을 굳이 강조한 이유도 이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건립하려면 각종 법령에 따라 정식 법인 등록 절차와 이에 따른 회계 보고가 필요하게 되고, 나아가 정당한 법인세 부과 등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네이버·카카오·티맵모빌리티 등 국내 지도 사업자는 고정밀 지도를 활용해 길찾기 서비스 등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세금을 납부한다. 지도 가공은 보안을 위해 물리적으로 통제된 보호구역에서 외부 인터넷망과 차단된 전용 단말기를 통해 진행한다.

애플 지도(왼쪽)와 구글 지도에 청와대 위치와 내외부 이미지가 노출된 모습 (각 지도 앱 갈무리)

안보·데이터 주권 위협은 여전…'일본해' 소동 이어 靑 노출
지도 반출에 따르는 안보와 데이터 주권 위협은 반출 전부터 꾸준히 조짐을 보였다. 정부 역시 2007년과 2016년 구글로부터 같은 요청을 두 차례 받았지만 안보상 이유로 반출을 불허했다.

올해 1월 애플 지도에서는 국가 1급 보안시설인 청와대의 주요시설 위성지도가 가림처리 없이 노출됐다. 구글 지도 역시 청와대 위성지도와 청와대 개방 당시 촬영된 건물 내부를 공개 상태로 방치했다.

이에 청와대는 구글·애플 양사에 보안시설 가림처리를 요청했다. 현재 애플 지도 위성 이미지에는 청와대 본관과 일대에 가림처리가 적용됐고 지명 정보도 표시되지 않는다. 구글 지도는 지명 정보는 뜨지 않지만 별도 가림처리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8월에는 구글 날씨 서비스 내 지도에 독도가 '다케시마'로, 동해가 '일본해'로 잘못 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황성혜 구글코리아 부사장은 해당 사태와 관련해 "구글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므로 중립적 언어를 쓴다"고 설명했다.

산학계 반대 강경…결정 앞둔 정부 고심
정부는 지도 반출이 안보와 국내 산업 위협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면서도 결정은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수위를 높이는 미국의 관세 압박과 산학계의 강경한 반출 반대 사이에서 고심하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가 타 국가에서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인 2만 5000대 1 지도 데이터를 제공한다면 우려가 훨씬 줄어들 수 있다. 구글과 애플은 타 국가에서 2만 5000대 1 지도 데이터로도 길찾기와 대중교통 안내, 상점 정보 등 각종 지도 서비스를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5000대 1 고정밀 지도를 끈질기게 요구하면서 '한국 정부의 지도 데이터 미제공'을 핑계삼아 극단적으로 제한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는 중이다. 길 찾기 안내는 물론 대중교통 안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식당이나 쇼핑몰 등에 대한정보 제공도 미진하다.

우리 국민은 토종 지도 서비스인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지도 등을 이용해 여러 지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선 구글 맵을 이용했을 때 국내 여행이 상당히 불편한 수준이다.
정부는 일단 고정밀 지도 반출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안보 위해 요소가 없어야 국외 반출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게 국방부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 역시 "내부적으로 정확하게 (지도 반출은)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고정밀 지도 반출이 통상 이슈로 치환되버린 현재엔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주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구글 등 인공지능(AI) 대기업엔 고품질 학습 데이터"라며 "고정밀 지도가 구글의 AI 모델에 학습된다면 우리나라 구석구석의 위치 정보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계로 전환할 수 있는 산업 기반 데이터가 돼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be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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