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배달도 척척…약물전달 플랫폼이 뜬다[다크호스 플랫폼④]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3월 06일, 오전 08:31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플랫폼 기술개발이 주목받으면서 약물전달시스템(DDS) 플랫폼의 가치도 부각되고 있다. DDS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기존 약물의 제형을 개선해 상업적 가치를 높이는 개량·가치증대형과 신약 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접근성 혁신형이다.

주사 제형 위고비. (이미지=AFP 연합뉴스)




◇韓 DDS 기술, 비만신약 판도 흔든다

개량형은 이미 시장성이 입증된 약물을 바이오베터나 개량신약으로 재설계하는 데 쓰인다.

정맥주사(IV)를 피하주사(SC)로 전환하는 알테오젠(196170)의 ALT-B4, 장기지속형 주사제 플랫폼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약효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투약 편의성과 순응도를 높이고 특허 수명을 연장하는 데 초점이 있다. 신약 대비 개발 리스크와 기간이 짧다는 점이 장점이다.

반면 접근성 혁신형은 약물이 도달하지 못하던 영역을 공략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하자면 애초에 표적세포에 미사일을 배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장소를 콕 집어 퀵서비스를 가능케한다. 뇌-혈관장벽(BBB)을 넘어 중추신경계(CNS)로 약물을 전달하는 BBB 셔틀이나 갈낙(GalNAc) 기반 간 표적화 기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단순 제형 변경을 넘어 약물의 적용 가능성을 확장하는 인프라 성격이 강하다. 성공 시 파급력은 크지만 기술 난도와 리스크도 높다.

최근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각광받으면서 주목받은 기업 상당수는 신약 개발사보다는 DDS 기술 보유 업체였다. △펩트론(087010) △지투지바이오(456160) △인벤티지랩(389470) △라파스(214260) 등이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이들은 기존 GLP-1 계열 약물의 투약 주기 연장이나 제형 변경을 통해 편의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특히 특허 만료를 앞둔 세마글루타이드를 활용한 바이오베터 개발이 활발하다. 세마글루타이드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비만약 위고비의 주성분으로 안전성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돼 있다. 기존 원료의약품을 DDS 기술에 탑재한 바이오베터·개량신약 개발시 의약당국의 규제가 비교적 관대하기도 하다.

인벤티지랩은 세마글루타이드와 티르제파타이드를 기반으로 한 1개월 지속형 주사제(IVL3021, IVL3024)와 먹는 세마글루타이드(IVL3027)를 개발하고 있다. IVL3021, IVL3024는 장기지속 플랫폼을 통해 잦은 투약의 부담을 낮추는 전략이다. 먹는 위고비 IVL3027은 펩타이드 약물 경구화 기술인 IVL-페포플루이딕을 통해 기존의 먹는 GLP-1 대비 생체흡수율을 높여 생산효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라파스는 세마글루타이드 마이크로니들 패치의 2상 임상시험계획(IND)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의약품을 마이크로니들에 적용해 허가받은 선례는 아직 없어 라파스가 선두주자에 속한다. GLP-1 비만약의 제형변경에서 핵심이 생체흡수율인 만큼 라파스는 새로 시작할 임상 2상에서 생체흡수율을 5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상업화 경험이 제한적인 국내 바이오텍에는 신약후보물질의 기술수출보다 DDS 기술수출이 현실적인 수익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알테오젠이 미국 머크(MSD)에 ALT-B4를 기술수출한 지 5년만에 상용화에 성공한 것도 ALT-B4가 키트루다라는 완성된 신약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변경하는 DDS였던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GLP-1 비만약 개발이 과열된 시장 상황과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미국, 유럽보다 작은 한국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플랫폼이 있다면 제형변경처럼 개량신약의 루트로 접근하는 것이 신약개발 기간과 비용 관점에서 현실성 있는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개량형 플랫폼은 신약 대비 로열티율이 낮은 편이라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보통 신약후보물질 기술수출시 잘된 딜이라고 평가받는 로열티 비중이 6~8%이고 기존 신약의 특허기간을 연장하는 정도의 약물전달 플랫폼 기술은 1~3% 선에서 로열티가 결정된다”며 “비독점으로 여러 차례 다른 상대방에게 기술수출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만큼 기술수출 계약 하나하나의 규모를 키우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올릭스의 GalNAc-asiRNA 기술 (자료=올릭스)




◇‘신의 한 수’ 된 DDS…접근성에 혁신

올릭스(226950)는 갈낙(GalNAc) 기반 짧은 간섭 리보핵산(siRNA) 전달 기술인 GalNAc-asiRNA로 신약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리보핵산(RNA) 치료제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 발현을 억제하기 때문에 차세대 모달리티로 꼽히지만 체내 안정성과 세포 내 전달 효율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이를 전달할 배달부가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GalNAc-asiRNA는 유도할 수 있는 물질을 붙여 RNA 자체를 직접 간세포에 전달한다. 심혈관질환, 대사성질환 등 많은 질병이 간에서 발현되기 때문에 RNA 치료제에 갈낙을 붙이면 높은 효율로 간세포에 약물이 전달돼 약의 효능이 배로 높아진다.

올릭스는 기술수출로 기술의 신뢰도도 어느 정도 시장에 입증했다. 지난 2021년 GalNAc-asiRNA 기술을 중국 한소제약에 기술수출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한소제약으로부터 마일스톤 기술료로 300만달러(약 43억원)를 수령하는 등 GalNAc-asiRNA를 적용한 치료제 개발도 순항하고 있다.

BBB 셔틀 플랫폼을 개발 중인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시스(이하 리스큐어)는 CNS 약물 전달을 겨냥한다. BBB란 외부 물질의 뇌 유입을 차단하는 장벽으로 뇌의 항상성을 조절하기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문제는 뇌질환 치료를 위한 약물이 들어가는 것도 막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BBB를 투과하는 약물을 만드는 것이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최대 난관으로 꼽힌다. BBB를 효율적으로 통과시키지 못하면 두개강 내 직접 투여(ICV)나 척수강 주사 같은 침습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 빅파마들 사이 BBB 셔틀 플랫폼 확보 경쟁에 불이 붙었다. 최근 이뤄진 BBB 셔틀플랫폼의 기술이전 계약 규모는 작게는 5000억원, 크게는 4조원에 달한다. 높아지는 BBB 셔틀 기술에 대한 주목도에 힘입어 리스큐어도 현재까지 4건의 물질이전계약(MTA)을 체결했으며 추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MTA가 반드시 기술수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 체결은 기술 검증 단계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진화섭 리스큐어 대표는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를 계기로 3건의 MTA를 추가로 협의하고 있다”며 “협의를 마치면 총 6개 회사와 15개 물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기술이전과 같은) 관련 연구 성과도 연내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빅파마 사업개발(BD) 부서 출신의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제형변경 플랫폼이나 장기지속형 플랫폼의 경우 이미 기반이 되는 약물이 있는 가운데 이를 더 편리하게 쓰기 위한 기술이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로열티율을 가져가는 것이 맞다”면서도 “반면 일부 CNS 약물이나 뇌 관련 암과 같은 적응증은 일정 비율 이상의 BBB 투과율을 보이지 않으면 약물 자체가 치료제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BBB 셔틀 플랫폼과 같은 기술은 약물 자체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다른 플랫폼 기술보다 로열티율을 높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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