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 옥외광고 시장은 왜 아직도 ‘감’에 머물러 있는가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3월 12일, 오전 11:44

[양승만 드래프타입 공동창업자·CSO]2024년 기준 한국 옥외광고(OOH) 시장 규모는 4조6000억원을 넘어섰다. 디지털 옥외광고(DOOH)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강남과 명동, 코엑스의 초대형 LED와 3D 아나모픽 영상은 이제 글로벌 주요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광고주 입장에서 “그래서 이 광고비 투자는 우리 사업 성장에어떤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을 수 없다. 언제까지 “사람들이 많이 보았을 것이다”는 설명에 머문다면, 이 시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4조원이 넘는 시장이라면 이제는 ‘많이 봤을 것이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몇 명이 보았고,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구체적인 효과를 말해야 한다.

지난 10년 광고 시장은 클릭과 전환 중심의 퍼포먼스 마케팅이 주도해왔다. 단기 성과는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업의 규모 자체를 한 단계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옥외광고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퍼포먼스 마케팅만으로 성장해온 기업들이 알고리즘 기반 도달의 상방 한계에 부딪히면서, 오프라인 대중 접점에서의 규모감 있는 노출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안에서 아무리 정밀하게 타팅해도 닿지 않는 대중이 있고, 그 대중에게 물리적 존재감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매체는 옥외광고가 거의 유일하다. 스킵할 수 없고, 차단되지 않으며, 도시의 일상 동선 위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는 특성이 여기서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이 가치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옥외광고 시장에서 광고주가 캠페인 종료 후 돌려받는 보고서의 대부분은 게시 사진과 매체 위치 목록이 전부다. 실제로 몇 명이 광고를 보았는지, 그중 우리의 잠재고객은 얼마나 되었는지를 데이터로 제공받아 본 광고주는 극소수에 가깝다. 일부 업체가 AI 카메라나 위치 데이터를 활용한 노출 분석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는 특정 매체 유형에 국한된 것이지 옥외광고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광고주가 궁금해하는 것은 그보다 앞선 질문이다. 그 노출 중 실제 우리의 잠재고객은 얼마나 되었는지, 광고 이후 우리 제품을 더 쉽게 떠올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실제 선택 가능성을 높였는지다. 그러나 지금은 이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노출 자체를 정량화하는 첫 단추조차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지금 한국 옥외광고 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장비가 아니다. 광고비 투자의 성과를 광고주의 비즈니스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체계다. 이 체계는 크게 세 단계의 데이터 기반 설계로 완성된다.

먼저, 옥외 매체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계측 방법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모든 매체에 AI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물리적 한계가 뚜렷하기에, 북미 선진 시장과 같이 지오펜싱기술과 통신 시그널 데이터를 결합한 방식이 대안이 된다.

광고 매체를 중심으로 가상의 경계를 설정하고 해당 구역을 통과한 비식별 통신 데이터를 식별함으로써, 실제 노출 인구의 규모와 타겟을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통신 시그널이 닿지 않는 실내 공간의 경우, 사전 동의를 얻은 특정 앱 사용자의 근거리 디바이스 추적이나 AI 비전 분석 기술을 보완적으로 활용해 데이터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

다음으로, 측정된 노출 데이터를 바탕으로 브랜드 마케팅의 본질인 ‘인지와 인식의 변화’를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노출 여부의 확인을 넘어, 실제 타겟 시장 전체에서 발생한 증분 기여를 파악하는 것이다. 옥외광고는 특정 개인에게 도달하는 것을 넘어 시장 전체의 ‘공통된 인식’과 ‘브랜드의 실재감’을 형성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의 역할은 정밀하게 계측된 노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잠재 고객층 전체의 브랜드 리프트가 캠페인 전후로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비자가 특정 제품군을 떠올리는 순간에 우리 브랜드가 선택지에 오르는 비율이 시장 전체에서 얼마나 상승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브랜드 자산 가치에 어떤 유의미한 증분을 만들어냈는지를 정량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끝으로 확보된 인식의 증분을 비즈니스 성과와의 인과관계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브랜드 상기도의 상승이 실제 포털 검색량의 변화나 온·오프라인 방문 트래픽, 그리고 구매·재구매로 이어지는 흐름의 기여도 분석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노출에서 인식의 변화, 그리고 최종 성과까지 하나의 데이터 선으로 연결될 때, 옥외광고는 ‘측정 불가능한 비용’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투자’로서 사업 성장을 돕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옥외광고는 “사람들이 많이 보았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측의 언어에 의존해 왔다. 앞으로는 “정밀하게 계측된 타겟에게 노출되었고, 그 결과 브랜드 상기율이 얼마나 상승했으며, 이것이 최종적인 비즈니스 지표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라는 데이터의 언어로 답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 구조가 시장의 공통 규격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옥외광고의 예산 확대는 여전히 ‘확신 없는 실험’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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