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누리호 엔진 줬다?”...왜곡된 쇼츠에 가려진 한국형 발사체의 진실[팩트체크]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3월 13일, 오후 05:41

국산 로켓 누리호 발사 장면.(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국산 로켓 누리호의 엔진이 사실은 러시아가 만들어준 것이라는 취지의 잘못된 유튜브 쇼츠 영상이 확산하고 있다. 해당 영상들은 과거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나로호 사업 당시, 러시아가 모형 엔진 대신 실제 엔진을 잘못 제공했고, 한국이 이를 역설계해 엔진 구조를 파악한 뒤 국산 75톤급 엔진 개발과 누리호 발사 성공까지 이뤄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리호 개발의 주역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한 국내 항공우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국가 우주개발 성과를 깎아내리기 위해 왜곡된 주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한 유튜브 숏츠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사진=유튜브 숏츠 갈무리)
영상들은 나로호 개발 당시 러시아가 더미 엔진을 제공해야 했지만 실수로 실제 액체엔진을 남기고 갔고, 한국이 이를 엑스레이 단층촬영과 3D 스캔, 금속 성분 분석 등을 통해 역설계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영상은 당시 러시아가 디폴트 위기 속에서 예산과 시간 문제로 실제 엔진을 임시로 넣었으며,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뒤 관련자들을 숙청했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누리호 개발 주역 “2000년대 초반부터 쌓아온 기술의 결실”

누리호 개발을 이끌었고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한영민 소장은 이런 영상들이 사실을 왜곡해 누리호 연구진의 성과를 폄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진개발부장 등을 맡아 실제 누리호 엔진 개발을 주도했던 그는 유튜브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 소장에 따르면 러시아가 나로호 3차 발사 이후 남기고 간 것은 지상검증용 발사체(GTV)였다. 여기에 장착된 엔진은 실제 비행용이 아니라 발사대와 지상 설비를 점검하기 위한 시험용 모형 엔진이었다. 겉모습은 실제 엔진과 비슷했지만, 핵심 부품과 내부 기계 요소가 빠진 사실상 ‘껍데기’에 가까웠다는 설명이다.

그는 “겉으로는 진짜 엔진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확인해보니 터보펌프 임펠러, 각종 회전체, 연소기 분사기 같은 핵심 부품은 전혀 없었다”며 “형상과 연결부만 맞춘 채 발사대 시스템, 탱크, 밸브류 인터페이스를 검증하기 위한 모형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연구진이 실수로 실제 엔진을 넘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한 소장은 “만약 러시아가 실제 비행용 엔진을 통째로 넘겼다면, 해당 담당자는 자국에서 처벌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당시 엔진은 수천억원 규모의 전략 기술이었는데, 이를 협정도 없이 몰래 넘겨줬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누리호 75톤급 엔진이 나로호 이후 갑자기 얻어진 기술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국내 액체엔진 연구의 축적 위에서 나온 결과라고 강조했다.

2002년 액체추진 우주과학로켓 KSR-3 발사 이후 국내에서는 독자적인 위성 발사체 개발 필요성이 커졌고, 나로호 사업과 별개로 국산 액체엔진 기초연구가 시작됐다. 한 소장은 “2002년쯤부터 이미 케로신·액체산소 기반 분사기를 0.1톤급 수준에서 설계·시험하기 시작했고, 실제 분사기 설계와 연소시험도 국내에서 직접 했다”며 “당시 24종 안팎의 후보 분사기를 설계하고, 이 가운데 14~16개를 실제 연소시험해 어떤 형상이 가장 적합한지 스스로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선별한 분사기 19개를 묶어 2톤급 축소형 연소기를 만들었고, 이를 다시 30톤급 엔진으로 키우는 연구를 2000년대 중반부터 진행했다. 동시에 정부와 항우연은 ‘러시아와 협력하는 나로호’와 ‘국내 독자 발사체’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병행 검토했다. 이후 2004~2005년부터 30톤급 연소기와 가스발생기, 터보펌프를 자체 개발하는 연구가 추진됐고, 이는 훗날 누리호 75톤급 엔진의 선행기술로 이어졌다.

러시아와 협력한 나로호 개발과 발사가 순탄치 않자, 다음 발사체만큼은 반드시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2007년께부터 누리호 사업이 기획됐고, 사업 명칭도 러시아 기술에 기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아 ‘한국형 발사체’로 정해졌다. 기존 30톤급 엔진 연구 결과와 분사기 데이터는 이후 ‘75톤급 엔진 4기 클러스터링’이라는 새로운 설계 개념으로 발전했고, 현재의 누리호 구성도 이 과정에서 구체화됐다.

한 소장은 “국내 제작 인프라와 설계·시험 역량을 고려할 때 75톤급 엔진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나왔고, 이를 4기 묶으면 1.5톤급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며 “이 판단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됐고, 누리호는 오랜 국산화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설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작과 공정 기술

전문가들은 나로호와 누리호가 전혀 다른 발사체라는 점에서도 유튜브 영상의 주장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전 항우연 원장)는 “러시아가 실물 엔진을 남겨두고 갔고, 이를 분석해 누리호를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로켓 엔진은 단순히 실물을 본다고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로켓 기술의 핵심은 설계 자체보다 제조와 공정 기술에 있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인 설계 원리와 수식은 이미 학계와 기술 자료를 통해 널리 공개돼 있지만, 실제로 성능을 구현하는 것은 재료 기술과 제작 공정, 시험 역량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로켓 엔진 설계는 공개 자료만으로도 일정 부분 접근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엔진을 만들고 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핵심은 공장 수준의 제작 기술과 반복 시험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과거 인터뷰에서 로켓 엔진은 설계보다 실제 제작과 저비용 생산이 더 어렵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로켓 기술 경쟁력의 핵심이 설계도 그 자체보다 제조 역량에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이제는 현재 성과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가볍고 효율적인 엔진과 재사용 발사체 같은 차세대 기술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리호는 기본적으로 우리 연구진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라며 “현재 기술 수준에 머물지 말고 더 가볍고 효율적인 발사체로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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