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SK텔레콤 제공)
1996년 1월 3일, 오전 9시 1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남인천영업소에서 가입한 CDMA 세계 1호 고객의 첫 반응이다.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는 하나의 주파수 대역을 고유 코드로 구분해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쓰면서도 서로 간섭 없이 통화할 수 있게 하는 2세대 이동통신(2G) 핵심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CDMA폰 'SCH-100'을 출시하고 한국이동통신이 4월 12일 서울과 수도권에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며 한국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이동통신을 상용화한 국가가 된 지도 어느덧 30주년이 됐다.
CDMA 상용화 9개월 만에 전국망이 구축됐고 이동통신은 전 국민의 인프라로 빠르게 확산했다.
1996년 4월 1일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개시식에서 시험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SK텔레콤 제공)
카폰에서 시작한 이동통신…CDMA를 선택한 韓
대한민국 이동통신 서비스는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카폰(차량전화)에서부터 시작됐다.
카폰은 서비스 개시 1개월 만에 2000여 명이 가입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는 자동차에 장착된 전화기로 통화하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이던 시대였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 최초 휴대형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됐고 아날로그 기반 이동통신(1G) 대중화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아날로그 방식의 한계에 직면했고 가입자 급증으로 통화 품질 저하와 용량 부족 문제가 심화되면서 디지털 전환이 불가피하게 됐다.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는 TDMA(시분할 다중접속) 방식이 사실상 2세대 이동통신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CDMA는 상용화 사례가 없는 미지의 기술이었다.
CDMA는 이론적으로 TDMA보다 더 많은 이용자가 동시에 통화할 수 있었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신호 처리와 고성능 디지털 기술이 필요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은 TDMA 대신 더 높은 수용 용량과 기술 자립 가능성을 가진 CDMA를 선택했다.
정부는 CDMA 단일 표준을 선언하고 한국이동통신을 비롯해 ETRI·삼성전자·LG전자 등과 함께 민관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특히 한국이동통신은 네트워크 구축과 상용화를 맡아 기술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했다.
3월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 출범 사진. (SK텔레콤 제공)
이동통신 민영화와 SKT의 탄생… CDMA 상용화 완성
CDMA 기술 개발이 한참 진행되던 시기 통신 산업 지형도 큰 전환기를 맞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2이동통신 사업자 재선정과 한국이동통신 민영화가 동시에 추진됐다.
1994년 공개 입찰을 통해 선경(현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현재의 SK텔레콤(017670)이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통신 산업 내 경쟁 체제 도입이 CDMA 상용화를 앞당기는 동력이 됐다.
CDMA 상용화는 2024년 IEEE(국제전기전자공학협회)로부터 'IEEE 마일스톤'으로 인정받았다. IEEE 마일스톤은 글로벌 ICT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전기·전자·통신 분야에서 인류사에 기여한 혁신에만 주는 상이다. 트랜지스터 발명, 인터넷 탄생 등이 IEEE 마일스톤으로 등재되어 있다.
CDMA 상용화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압도적이었다. ETRI가 2002년 발간한 CDMA 기술개발 및 산업 성공 요인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CDMA 이동통신 산업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연평균 37.2% 성장해 누적 생산액 42조 원을 기록했다. 생산유발효과는 125조 원, 고용유발 효과는 142만 명이다.
아울러 국내 이동통신의 기술적 기반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부품 국산화율도 70% 수준까지 향상하는 등 국내 통신 산업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1995년 6월 12일 ’정보통신 전시관 행사’에서 경상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CDMA 시험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SK텔레콤 제공)
전국 단위 통신 인프라, ICT 산업 성장 토대로
이렇게 구축된 통신 인프라는 ICT 산업과 경제 성장을 이끈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CDMA 상용화 이후 구축된 전국 단위 통신 인프라는 ICT 산업 성장의 토대가 됐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1998년 1000만 명을 넘어선 뒤 빠르게 증가해 1999년에는 유선 전화를 추월했다.
네트워크 확산은 휴대폰∙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와 반도체 등 핵심 소재 분야의 성장을 촉진했다. 또 게임∙음악∙드라마 등 K-콘텐츠 열풍의 토대가 됐다.
국내총생산(GDP) 내 정보통신산업 부가가치 비중은 1996년 2.2%에서 2025년 13.1%로 늘어났다. 규모로는 17조 8000억 원에서 304조 원으로 증가했다.
반도체, 단말기 등을 포함한 IT 산업 수출은 1996년 412억 달러에서 2025년 2643억 달러로 약 6.4배 커졌다. IT 산업 수출은 꾸준히 전체 수출에서 30% 이상을 넘기며 대한민국 수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1997년 3월 24일, SK텔레콤으로의 사명 변경 및 신 CI 선포식을 진행하는 모습 (SK텔레콤 제공)
CDMA 30년, 다음은 'AI 고속도로'
30년 전 CDMA는 전국을 연결하는 통신 고속도로를 까는 역할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데이터와 AI를 실어 나르는 'AI 고속도로'를 구축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최근 통신 인프라는 이제는 데이터와 AI, 그리고 산업 전반을 연결하는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초고속·초저지연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AI 모델이 결합된 인프라는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최초 CDMA 상용화가 대한민국 ICT 도약의 출발점이 되었듯 AI 인프라 구축은 다음 30년 대한민국 경쟁력을 좌우할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종훈 SK텔레콤 네트워크전략담당 부사장은 "AI 시대에는 네트워크가 단순한 데이터 전달 수단을 넘어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지능형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며 "제조·물류·의료·금융 등 전 산업의 생산성과 혁신 속도를 결정짓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minju@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