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한층도 자석 된다"···韓, 70년 물리학계 난제 깼다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4월 22일, 오전 12:01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자석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발견돼 산업과 의료, 전자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돼 왔다. 특히 전기차 한 대에는 300개가 넘는 영구자석이 들어갈 정도로, 자석은 현대 기술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이러한 자석은 일반적으로 수백만 개에서 수십억 개의 원자층이 쌓여 만들어지지만, 국내 연구진이 이를 극단적으로 줄여 ‘단 하나의 원자층으로 이루어진 자석’을 실험적으로 구현해 존재를 입증했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얇은 자석’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물리학회가 발행하는 권위 학술지 리뷰스 오브 모던 피직스(Reviews of Modern Physics)에 22일자로 게재됐다. 이 학술지는 특정 분야를 개척한 연구자에게만 논문을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인 연구자가 이름을 올린 사례도 故 이휘소 박사, 김진의 서울대 교수, 이주련 성균관대 교수 등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이번 성과는 국내 연구진이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연구를 이끈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제근 교수는 “자석을 원자 한 층 수준까지 줄일 수 있다면 산업 구조와 생활 방식 모두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던 개념을 10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실험적으로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박제근 서울대 교수.(사진=서울대)
◇73년 난제 ‘2차원 자석’…이론에서 실험으로

박 교수팀이 집중해 온 분야는 ‘2차원 자석’, 즉 반데르발스 자성 물질이다. 기존 자석은 원자가 3차원으로 촘촘히 쌓인 구조 덕분에 안정적인 자성을 유지하지만, 원자 한 층 수준의 얇은 구조에서도 자성이 유지될 수 있는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과제였다.

이 가능성은 이미 1940년대부터 노르웨이 물리학자 라르스 온사거 등을 중심으로 이론적으로 제기됐지만, 실제 실험으로는 한 번도 증명되지 못했다. 박 교수팀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2012년 세계 최초로 2차원 자석 개념을 제시했고, 2016년에는 삼황화린철(FePS₃) 물질을 이용해 원자 한 층에서도 자성이 유지됨을 실험적으로 확인하며 73년 만의 증명에 성공했다. 이후 빛을 이용해 물질 상태를 제어하는 등 연구 영역을 확장해 왔다.

2차원 자석은 기존 자석과 달리 나노미터 수준의 매우 얇은 두께를 가지기 때문에 활용 분야도 다르다. 모터나 스피커처럼 강한 힘을 내는 기존 자석과 달리, 2차원 자석은 스핀트로닉스, 양자컴퓨팅, 초소형 메모리 등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 적합한 소재로 꼽힌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은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총정리한 것으로, 2차원 자성 물질의 기본 원리부터 새로운 양자 현상, 향후 연구 방향까지 폭넓게 담았다. 분량은 88페이지에 달하며, 해당 분야 연구자들에게 일종의 ‘표준 참고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박 교수는 2010년부터 이 분야를 개척해 2016년 세계 최초 관련 논문 4편을 발표한 이후, 2차원 자성 연구를 기초 물리학의 핵심 축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그는 “전 세계에서 매년 1000편 이상 논문이 나오는 재료과학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며 “새로운 자성 물질과 양자 현상이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2차원 자성체 개념도.(자료=서울대)
◇양자기술·초저전력 소자까지…산업 적용 가능성 확대

박제근 교수는 이론적으로만 제기됐던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의 가능성을 실제 실험으로 확인한 만큼, 향후 이 물질을 활용해 새로운 물리 현상을 발견하고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적으로는 이 연구가 전력 소모가 적은 차세대 전자소자와 양자기술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2차원 반데르발스 자성체는 초저전력 자기 메모리, 초고속 스위칭 소자 등 차세대 스핀트로닉스 기기에 적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또한 물질의 양자 상태를 정밀하게 제어함으로써 원하는 양자 기능을 설계하는 플랫폼 기술로 발전할 수 있어, 양자컴퓨팅 기술의 기반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자성 반데르발스 연구는 한국에서 개척된 세계 최초의 연구 분야”라며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기업이 상용화에 활용하기까지는 아직 간극이 있지만, 원리적으로는 작동 가능성을 확인했고 국제 학계에서도 검증을 받은 만큼 산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스핀 소자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통해 아직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물리 현상을 발견해 물리학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며 “국내 연구자들과 함께 2차원 양자물질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거점을 만드는 것도 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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