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3대 강국의 조건, 결국 ‘자본’입니다 [김현아의 IT세상읽기]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4월 26일, 오후 05:08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한국이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에서 ‘톱3’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전 영역의 절대적 순위라기보다 모델 성능과 특허, 산업 확산 속도 등 주요 지표에서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기술 경쟁력 자체는 이미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지만, 산업화 단계로 넘어오면서 다른 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술력만으로는 AI 패권을 확보하기 어렵고, 승부는 자본과 인프라에서 갈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AI 경쟁의 중심 이동…모델에서 인프라로

문제는 ‘다음 단계’입니다. AI 경쟁의 중심이 모델 개발에서 데이터센터, 전력, 자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연산 수요는 연평균 3배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감당할 초대형 인프라 확보 여부가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Index Report 2026’ 역시 글로벌 AI 경쟁이 모델 성능 중심에서 투자와 인프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025년 기준 미국의 AI 민간 투자는 약 2858억 달러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고, 중국(약 124억 달러), 영국(약 59억 달러), 한국(약 17억8000만 달러)은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이 격차는 단순한 규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AI 산업은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인재가 동시에 필요한 고비용 구조입니다. 기술의 우수성보다 “얼마나 큰 단위로 지속 투자할 수 있는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임용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서울대 AI 정책 이니셔티브 디렉터)도 “AI 산업은 기술 산업이면서 동시에 자본 산업”이라며 “현재 금융 구조만으로는 AI 3대 강국 도약을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네이버·삼성SDS, ‘자본 경쟁’ 전환의 신호

이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네이버와 삼성SDS의 움직임은 중요한 변화의 신호로 읽힙니다.

네이버는 달러와 유로화를 동시에 활용한 ‘듀얼 커런시 그린본드’를 통해 약 1조60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자 주문은 발행 규모의 약 9배인 15조원 이상 몰리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해당 자금은 친환경 데이터센터 구축과 에너지 효율 개선 등 AI 인프라 투자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삼성SDS 역시 글로벌 사모펀드 KKR과 협력해 1조20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습니다. 여기에 기존 보유 현금 6조원 이상을 더해 AI 인프라 투자와 인수합병(M&A), 글로벌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두 사례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한국 AI 산업의 경쟁 축이 기술 중심에서 자본·인프라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글로벌은 이미 ‘AI 자본 블록’ 경쟁 단계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에서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캐나다 AI 기업 코히어와 독일 알레프 알파의 합병 추진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합병 이후 기업가치는 약 200억 달러(약 29.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들은 미국 빅테크 중심 구조에 대응해 ‘소버린 AI(주권형 AI)’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통제권과 기술 독립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AI 블록 형성입니다. AI 경쟁이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와 자본 단위의 구조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에이단 고메즈(Aidan Gomez) 코히어 CEO. 사진=코히어
◇AI 3대 강국의 조건은 ‘자본의 규모’입니다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조건도 분명해졌습니다. 더 뛰어난 모델이 아니라 더 큰 투자이고, 더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더 큰 인프라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의 기반에는 반도체 산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떠받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투자와 생산능력을 확대해야 전체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AI 경쟁력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자본 축적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축적이 이뤄질 때 기술 성과는 일부 기업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 증가가 국민경제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기본소득 같은 성과의 분배 구조에 대한 논의도 점차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 AI 산업의 과제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자본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키워낼 것인가가 다음 경쟁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 역시 기업 간 인수합병을 보다 유연하게 허용하고, 기업들이 더 큰 자본을 확보해 AI 투자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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