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 한국 토큰 생태계는 아직 ‘대표 성공 모델’을 만들지 못했나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5월 12일, 오전 09:31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 앞선 기고에서 필자는 토큰 생태계의 개념과 적용 기준을 다뤘다. 토큰은 단순한 발행물이 아니라 기여, 보상, 권리, 정산, 거버넌스를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는 비즈니스 설계 도구이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왜 국내에서는 아직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충분히 나오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규제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규제 불확실성이 중요한 장벽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국내의 여러 시도들은 아이디어와 시장 수요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설계 순서의 오류, 예측하기 어려운 규제 환경, 그리고 금융 인프라와의 연결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함께 작동하고 있었다.

◇위메이드·뮤직카우·카사코리아 사례

위메이드의 위믹스는 블록체인 게임과 토큰 경제를 연결한 국내 최대 규모의 시도였지만, 유통량 공시 문제와 거버넌스 논란이 반복되면서 결국 생태계 신뢰가 흔들렸다. 이 사례는 토큰 발행량·유통량 관리, 공시 체계, 의사결정 구조가 곧 생태계 신뢰와 직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뮤직카우는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소액 거래 가능한 형태로 만든 혁신 모델이었으나, 금융당국이 2022년 이를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하면서 구조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사업이 확장된 이후가 아니라, 법적 성격에 대한 판단과 설계가 초기 단계에서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카사코리아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부동산 조각투자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받았고, 대형 금융기관 컨소시엄과 협업하며 투자자 보호 장치도 일정 수준 갖췄다. 그러나 샌드박스 제도에 따른 발행 규모 제한과 독자적인 수익 모델 부재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기존 증권사에 매각됐다. 이는 제도권 규정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사업 모델의 지속 가능성과 금융 인프라와의 실질적 연계를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내재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
이 사례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첫 번째 교훈은 설계 순서다. 토큰은 발행하는 순간 생태계가 완성되는 구조가 아니다. 먼저 법적 권리 구조를 명확히 정의하고, 이후 기여와 보상 기준을 설계한 뒤, 공시와 거버넌스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용자와 투자자 보호 장치 역시 초기 설계 단계에 포함되어야 하며, 토큰 발행과 유통은 그 다음 단계의 문제다. 이 순서를 충분히 거치지 않고 발행 자체를 목표로 삼을 경우, 결국 신뢰 비용을 사후적으로 부담하게 된다.

두 번째 교훈은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다. 한국 규제의 핵심 문제는 엄격함 그 자체라기보다, 사업자가 사전에 적용 기준을 명확히 예측하고 구조화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규제가 완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규제 환경에서도 설명 가능한 구조를 선제적으로 갖춘 사업자가, 제도 변화 시점에서 가장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게 된다.

세 번째 교훈은 금융 인프라와의 연결이다. 토큰 생태계는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을 발행하는 것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실제 권리 행사, 결제, 정산, 보관, 회계, 세무, 투자자 보호 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금산분리, 전자금융업 규제, 자본시장법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국내 환경에서는 이러한 연결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제도 환경 역시 변화하고 있다. 2026년 1월 15일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토큰증권을 제도권 안에서 다룰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반면 디지털자산 기본법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은 아직 세부 구조를 조율하는 단계에 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법의 완성을 기다리는 태도가 아니라, 제도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권리 구조, 공시 구조, 보상 구조, 투자자 보호 구조를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그러나 성공 사례가 적다는 것은 시장의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설계된 첫 번째 대표 사례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다. 그 출발점은 ‘무엇을 토큰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순서로 설계할 것인가’다.

법적 성격과 권리 구조 검토가 첫 번째, 기여·보상·거버넌스 설계가 두 번째, 공시와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이 세 번째다. 이 순서를 충실히 따르는 기업과 설계자가 디지털자산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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