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업계 최초 신약 연구에 피지컬AI 적용...中로봇 CRO 잡는다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전 08:31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신약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평균 10~15년, 수조원의 비용이 지출된다. 하지만 성공 확률은 고작 0.01%에 불과하다. 이런 견고하고 오래된 공식이 마침내 깨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결합한 자율형 실험실(Autonomous Lab)이 신약 개발의 판을 통째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LG화학(051910)이 그 대전환의 전면에 나섰다. LG화학은 원래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 분석에 쓰이던 로봇 자동화 실험실을 바이오 신약 연구에도 전격 적용하기로 했다. LG화학은 이미 자체 AI 신약개발 통합 플랫폼 메디엑스(Mediex)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은 향후 3년 내 AI와 로봇이 완전히 연동된 자율형 임상 시험실을 정식 론칭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이 시약 분석에 적용한 실험실 로봇 모습 (사진=LG화학)


◇피지컬 AI 전성시대...신약 임상에도 적용 초읽기

최근 글로벌 산업계 화두인 피지컬 AI(Physical AI)가 마침내 신약 임상 무대에도 본격적으로 올랐다. AI가 두뇌 역할을 맡아 실험을 설계하면 정밀 로봇 팔이 손과 발이 되어 오차 없이 물리적 실험을 수행한다.

LG화학이 대전 기술연구원 분석연구소에 구축한 로봇 자동화 실험실은 국내 화학 연구소 중 최초 사례로 알려졌다. 시작은 배터리 분야였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정밀 분석하는 데 먼저 적용됐다. 고온·고농도의 산 처리 등 위험하고 까다로운 업무를 무인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방식은 직관적이지만 결과는 혁신적으로 여겨진다. 담당 연구원이 분석할 시료를 보관함에 넣기만 하면 로봇이 출고부터 시료 전처리, 정밀 분석, 시료 폐기까지 전 과정을 혼자 원스톱으로 처리한다. 분석된 데이터는 시스템에 곧바로 자동 입력된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사라지면서 수기로 기록할 때 발생하던 휴먼 에러도 원천 차단됐다.

LG화학은 이 성공적인 로봇 모델을 신약 연구로 발 빠르게 확장할 예정이다. 기존 방식에서 연구원들이 낮 근무 시간에 맞춰 실험 준비와 진행에 직접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로봇 자동화 실험실 도입 이후 연구소는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는다.

LG화학 관계자는 "분석 자동화는 단순 업무 효율화를 넘어 연구원들이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동을 시작한 통합 플랫폼 메디엑스가 로봇 인프라의 두뇌 역할을 한다. 생명과학사업본부 내 전체 R&D 조직을 대상으로 도입된 메디엑스는 초기 후보물질 도출 영역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뽐내고 있다. 기존에 연구팀 단위로 흩어져 있던 방대한 데이터를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했고 그 위에 오픈소스 기반의 자체 AI 알고리즘을 얹어 타깃 반응 예측과 신약 후보물질 설계를 동시에 진행한다.

과거에는 설계와 예측·검증 단계가 분리돼 있어 막대한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이제는 두 과정이 실시간으로 이뤄져 연구 소요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신약 개발 공정에서 자율형 연구실의 진짜 위력은 강력한 선순환 구조에서 나온다.

AI가 수만 개의 후보물질 중에서 타겟 단백질 구조를 기반으로 분석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수천 개를 1차로 추려낸다. 이어 로봇이 △세포 배양 △유전자 조작 △단백질 정제 △약효 시험 등 고도의 반복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한다.

여기서 얻은 성공과 실패 데이터는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다시 AI 시스템에 투입된다. LG화학에 따르면 이는 가만히 둬도 레벨업이 되는 자동사냥 게임과 같다. 데이터를 머금고 루프를 돌수록 AI의 필터링 능력이 정교해지며 타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모든 실험 이력이 시스템에 데이터로 축적되기 때문에 담당 연구원이 교체되더라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헤매는 단절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졌다.

도입 효과는 가시적인 수치로 증명된다. LG화학은 이 자율형 시스템을 통해 평균 10년 이상 걸리던 바이오 신약 개발 기간을 약 5년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허성 있는 유효 선도 물질을 발굴하는데만 6년 이상 쏟아부어야 했던 과거의 소모적인 굴레를 마침내 벗어던진 셈이다.

중국 엑스탈파이 신약 임상 로봇 (사진=엑스탈파이)


◇중국 임상 로봇 상용화...LG화학, 2028년 이후 상용화 목표

이러한 혁신에도 불구하고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비교할 때 피지컬 AI와 실험실 자동화 영역에서 늦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신흥 제약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약진이 매섭다.

중국은 막대한 국가적 지원과 거대 내수 시장의 데이터를 무기로 임상 시험 로봇 활용에 있어 글로벌 최고 수준의 속도를 내고 있다. 다수의 중국 바이오 테크 기업들은 수백 대의 로봇 팔이 24시간 후보 물질을 합성하고 스크리닝하는 대규모 무인 실험실을 이미 상용화했다. 인건비 절감을 넘어 철저한 데이터 통제와 실험 오차율 0%를 목표로 임상 데이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계 글로벌 AI 신약 개발 유니콘 기업인 엑스탈파이(XtalPi)가 꼽힌다. 엑스탈파이는 양자역학과 AI, 그리고 대규모 로봇 자동화 연구실을 결합해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엑스탈파이의 계약 실적은 규모 자체가 압도적이다.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릴리와 약 3300억원 규모의 신약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도브트리와는 최대 약 8조8000억원 규모의 협력 계약도 맺었다. 여기에는 AI 설계뿐 아니라 로봇 기반 합성, 전임상 평가까지 포함된다. 엑스탈파이는 엔비디아와의 기술 협력도 병행하고 있다.

엑스탈파이는 수백 대의 로봇 워크스테이션이 빼곡히 들어선 거대한 로봇 팜(Robot Farm)을 상용화해 24시간 내내 화합물을 자동 합성하고 스크리닝하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인공지능이 최적의 화합물 구조를 도출하면 현장의 자동화 로봇들이 인간의 개입 없이 곧바로 실험에 착수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중국은 이처럼 엑스탈파이와 같은 혁신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제공하며 글로벌 신약 선점 경쟁에서 판을 뒤흔들고 있다.

반면 한국의 규제나 국가적 지원이 중국와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척박한 토양 속에서 LG화학이 보여주는 대규모 R&D 드라이브는 위기 탈출을 위한 확실한 시사점을 던진다.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는 지난해 업계 최고 수준인 4300억원의 연구개발 투자를 단행했다. 동시에 사업성이 불확실한 신약 파이프라인은 과감히 정리하고 시장 규모만 309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블루오션인 항암제 시장에 모든 화력을 쏟아붓는 생존 전략을 택했다.

현재 LG화학이 보유한 핵심 신약 파이프라인으로 미국 임상 3상 단계인 신장암 치료제 '포티브다'와 두경부암 치료제 '파이클라투주맙', 임상 1상 중인 면역항암 후보물질 'LB-LR110' 등이 꼽힌다.

LG화학은 이르면 2028년 글로벌 첫 항암 신약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LG화학은 전사적인 AI·로봇 인프라를 전면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LG화학은 마곡 R&D 캠퍼스에도 분석 자동화 실험실을 추가로 구축한다. 나아가 LG화학은 단순 물리적 자동화를 넘어 데이터 해석까지 완벽히 연계하는 AX(AI 전환) 융합 자동화 실험실로 고도화할 계획이다.

피지컬 AI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선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로봇과 AI가 결합된 통합 연구 플랫폼의 확보는 K-의료AI 생존을 위한 필수 방정식"이라며 "LG화학이 2028년 이후 구축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AI로봇 실험실과 항암 신약의 성공 여부가 국내 바이오 업계의 벤치마킹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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