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의 과학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5월 21일, 오전 05:00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과학에도 개성과 특수성이 존재할까. 과학은 과연 완전히 보편적인 학문일까. 과학은 객관성과 재연 가능성 위에 서 있다. 문제를 언제, 누가 풀어도 같은 결과를 얻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을 신뢰한다. 이런 점에서 과학은 나라와 민족, 역사에 무관한 만국 공통의 학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자에게 과학은 연구 현장에서 자신의 특수성을 발현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예술가 못지않게 말이다.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사진=고등과학원)
과학자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지리적 조건, 역사적 배경, 소속 기관의 연구 환경, 개인의 경험과 사고방식까지 모두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연구 주제의 선택,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상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과학의 방법 자체는 엄격한 객관성과 분석에 기반하지만 무엇을 연구하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과학자의 특수성에 크게 좌우된다. 이러한 특수성은 한편 극복해야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대한 발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15년 중국의 투유유 박사는 과학 분야에서 중국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녀는 고대 의학 문헌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 물질인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는 전통 지식과 현대과학이 결합할 때 얼마나 강력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사례다.

한반도와 그 인근 지역에서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단히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강역만이 지닌 지질과 해양, 기상 환경이 있고 그 속에서 적응해 진화해 온 고유한 생물권이 있다. 또한 한국어와 한글이라는 독자적인 말과 글 체계, 세상을 큰 구조에서부터 파악하려는 사고방식, 그리고 지역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경쟁과 협력 속에서 빛나는 K컬처를 키워온 장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 식음료, 건축, 의학, 자연과학, 민간 기술 등과 같은 다양한 전통과학 분야에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해석되지 않은 수많은 보물과 같은 지식이 잠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학은 우리나라에서 무관심하거나 비과학적 주제로 여겨지며 홀대받아왔다. 지금까지 전통시대의 과학 또는 기술에 기반한 연구나 주제, 방법론에서 외국에서 잘 하지 않는 연구는 정부의 지원이 박하거나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의 후진 양성도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우리의 과학’(K사이언스)을 발굴하고 지원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의 과학’은 우리가 남과 다른 면에 주목하고 이를 과학적 강점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외국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연구를 따라가고 앞서도록 밀어주는 전략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과학’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 출발점이다. 부디 이 정책이 실효성 있는 지원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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