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만나기 전 AI와 대화"...정신과 진료 도울 'AI 보조자' 나왔다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5월 24일, 오전 12:01

(카이스트 제공)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정신과 진료의 첫 단계인 초진 면담을 돕는 똑똑한 AI 보조자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 전 AI와 먼저 대화하며 자신의 상태를 정리하고, 의사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층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 모델이다.

카이스트(KAIST)는 전산학부 이의진 교수·산업디자인학과 이탁연 교수 연구팀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은주 교수 연구팀이 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한 정신과 초진 면담 지원 기술을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ACM CHI 2026’에 지난 4월 발표됐다.

흔히 ‘정신과는 문턱이 높다’고 한다. 환자는 처음 마음의 상처를 꺼내는 데 부담을 느끼고, 의사는 한정된 시간 안에 방대한 증상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는 환자의 서술에 크게 의존하기에 초기 정보 수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팀이 개발한 ‘AI 인터뷰어’는 기존의 딱딱한 문진과 다르다. 환자가 답변하면 이를 전문 지식(DSM 지식 구조)과 대조해 다음에 물어봐야 할 핵심 질문을 스스로 찾아낸다. 특히 “많이 힘드셨겠어요” 같은 공감 표현은 물론 ‘재진술’, ‘명확화’ 등 실제 상담 기법을 적용해 환자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돕는다. 수집된 대화는 환자의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시각화 대시보드로 요약돼 의료진에게 전달된다.

효과는 확실했다. 가상 환자 144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대부분 30분 이내에 진료에 필요한 핵심 임상 정보를 확보했다. 단일 질환은 10~15분 만에 필요한 정보의 90% 이상을 수집해냈다. 현직 정신건강 전문가 19명의 평가에서도 정보 수집 능력이 “초기 진단을 수행하는 수련의 수준”에 달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AI가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개발한 이의진 교수는 “정신과 면담은 환자 답변에 따라 대화 방향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며, 자살 사고나 트라우마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뤄 신뢰(라포)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보 수집의 완전성과 대화의 자연스러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안전 기준을 정립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AI가 미묘한 감정 뉘앙스나 개인의 서사적 맥락을 깊이 파악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AI를 반복적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코칭 가능한 견습생(coachable apprentice)’으로 정의했다. AI가 초진 단계의 부담을 덜면 의사는 최종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 등 인간 중심의 협업 체계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기술이 실용화되면 환자는 병원 방문 전 모바일로 AI와 대화하며 증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어 심리적 부담이 줄어든다. 의료진 역시 사전에 대시보드로 환자 상태를 파악해 실제 진료 시간에는 심층 상담에만 집중할 수 있어 대형 병원의 진료 효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의진 교수는 향후 확장 가능성에 대해 “병원 외래뿐 아니라 심리상담센터, 대학 상담소,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등 다양한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며 “우울, 불안, 수면 문제 등을 사전에 점검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나 비대면 진료, 고령자 정서 점검 등으로도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의 최종 목적지는 실제 의료 현장 안착이다. 이 교수는 “궁극적인 목표는 실제 환자 대상 임상 검증을 거쳐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HR) 시스템과 연동하는 것”이라며 “인간과 AI가 협력해 진료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정신건강 진료 모델을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