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대한신경과의사회 회장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와 가족의 가장 큰 혼란은 ‘치매’라는 한 단어에서 시작된다. 치매는 병명이 아니라 뇌질환으로 인지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고, 그 원인이 되는 질환은 100가지가 넘는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알츠하이머병이다.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을 구분하는 이 지점에서부터 진단도, 검사도, 치료도 갈라진다. 최근 여러 편에 걸쳐 다룬 칼럼들이 공통으로 짚은 것도 바로 이 정확함의 문제였다.
치매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9.25%, 그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은 28.42%에 이른다. 노인 열 명 중 한 명이 치매, 네 명 중 한 명 이상이 그 전 단계에 있는 셈이다. 고령화가 빠른 우리 사회에서 이 숫자는 앞으로도 늘어난다. 그만큼 정확한 진단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대한치매학회도 최근 백서에서 치매로 진행할 위험이 큰 경도인지장애를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하는 것이 치매를 줄이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조기 발견이 힘을 가지려면 정확한 진단 수단과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함께 가야 한다.
기억력이 걱정돼 신경과를 찾으면 한 번의 검사로 끝나지 않는다. 먼저 병력을 듣고 신경심리검사로 인지저하의 정도와 양상을 가늠한다. 혈액검사로는 갑상선 기능 이상이나 비타민 결핍처럼 치료로 되돌릴 수 있는 원인을 거른다. 컴퓨터 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은 뇌의 구조를 살펴 종양이나 뇌졸중 같은 이상을 확인한다. 이 단계들을 지난 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을 직접 확인해야 할 때 비로소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CT)이 쓰인다. 검사마다 보는 대상이 다르므로 순서를 건너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처음부터 가장 비싼 검사를 받는 것이 정확한 진단을 뜻하지도 않는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는 증상이 나타나기 15~20년 전부터 뇌에 서서히 쌓인다. 구조 영상으로는 잡히지 않는 이 변화를, 아밀로이드 검사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영상으로 확인한다. 부검과 비교한 연구에서 이 검사의 민감도와 특이도는 모두 90% 안팎으로 보고됐다. 원인 물질을 겨냥한 치료는 이른 단계일수록 효과가 크다. 정상도 치매도 아닌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그 원인이 알츠하이머병인지 가려내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다만 경도인지장애가 모두 치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양성이라는 결과 하나가 곧 치매 확정을 뜻하지도 않는다.
같은 인지저하라도 원인은 다양하다. 노년기 우울증은 치매처럼 보이지만 치료로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력이 있다고 모두 발병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에게서 그대로 유전되는 알츠하이머병은 일부에 그치고, 위험요인의 상당 부분은 생활에서 관리할 수 있다. 검사는 이러한 갈림길에서 방향을 정하는 정보이지, 그 자체로 결론이 아니다.
새 치료제를 쓰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 바로 이 진단이다. 약을 쓰기 전에 아밀로이드가 있는지 확인돼야 하고, 그 확인은 PET 검사나 뇌척수액 검사로 이뤄진다. 이 약은 진행을 늦추는 치료이지 되돌리는 치료가 아니어서, 맞는 환자를 가려내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잘못된 진단은 두 방향으로 환자에게 해를 끼친다. 치료할 수 있는 원인을 치매로 단정하면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알츠하이머병이 아닌데 항아밀로이드 약을 쓰면 효과 없이 부작용 위험만 지게 된다. 정확한 진단은 불필요한 치료와 불안을 함께 줄인다.
용어를 정확히 쓰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다. 흔히 ‘치매약’이라 부르지만 이 약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위한 것이다. ‘PET-CT로 치매를 조기 진단한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치매는 이미 인지기능이 저하된 상태여서 조기 진단의 대상이 아니고, 이 검사가 확인하는 것은 치매가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이다. 이름을 정확히 써야 환자도 의료진도 혼선을 줄인다.
다만 검사가 늘어난다고 진단이 더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 ‘치매 조기검사’라는 이름으로 검사를 권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아밀로이드 검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선별검사가 아니라 필요한 환자를 위한 검사다. ‘치매’라는 말이 공포를 자극하는 마케팅에 쓰이는 한, 정확한 정보가 가장 든든한 방어가 된다.
앞서 말한 병목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진단 수요는 빠르게 느는데,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인프라와 방사성의약품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신경과의사회는 이 병목을 풀기 위해 국내 방사성의약품 기업 듀켐바이오(176750)와 손잡았다. 이번 협약의 목적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신경계 질환의 조기 진단 접근성을 넓히는 데 있다. 환자가 가까운 신경과 개원병원에서 PET-CT를 갖춘 협력병원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진료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협력병원 인증과 검사 인프라 지원, 진료 흐름 연결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신경과 전문의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기로 했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다. 증상이 언제부터 어떻게 변해왔는지 기록해 두고, 진료에 함께 와 설명을 같이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혈압, 혈당, 운동, 수면처럼 조절할 수 있는 위험요인을 관리하는 것은 가족력과 무관하게 꾸준한 대비가 된다.
진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양성이라면 치료와 추적 관찰 계획을 의논하고, 음성이라면 다른 원인을 찾아 나간다. 돌이켜보면 환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비슷하다. 단순한 건망증인지,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증상이 없어도 받아야 하는지, 가족력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다. 답은 한 곳으로 모인다. 정확히 진단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검사를 제때 하자는 것이다.
신경과 의사들이 환자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깜빡함이 걱정될 때 검사부터 떠올리기보다, 그 변화가 어느 단계인지 진료에서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정확한 이름을 쓰고 필요한 검사를 제때 받는 것, 그것이 치매의 시대를 건너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