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원은 한국의 노벨상”…‘맨손의 생물학자’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 별세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7월 13일, 오후 01:39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과학기술의 공기를 마시고 땅을 밟은 지 7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단 하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입니다.”

2019년 한 인터뷰에서 한국 과학계의 도약을 염원했던 원로 과학자가 끝내 그 꿈을 보지 못한 채 영면했다.

대한민국 기초생물학의 개척자이자 과학·교육 행정의 기틀을 세운 조완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전 서울대학교 총장·전 교육부 장관)이 13일 오전 3시 30분 별세했다. 향년 98세.

조 전 원장은 연구자로서는 국내 발생생물학의 토대를 닦았고, 행정가로서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설립과 서울대 민주화, 교육 개혁을 이끈 한국 과학계의 대표적인 원로로 평가받는다.

조완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 사진=과학기술한림원
조완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 사진=과학기술한림원
한림원장재임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영국왕립한림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림원장재임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영국왕립한림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어린시절 조완규. 뒷줄 가운데.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어린시절 조완규. 뒷줄 가운데.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폐허 속 연구실에서 시작한 ‘맨손의 생물학자’

1928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직후 열악한 연구 환경에서도 학문의 길을 개척한 ‘맨손의 생물학자’였다.

1952년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그는 제대로 된 실험 장비조차 부족했던 시절, 종이와 연필만으로 가능한 인류유전학 출생성비 연구를 수행하며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발생생물학 연구에 집중해 포유동물 난자의 성숙 과정을 조절하는 핵심 기전을 규명하며 세계적인 발생학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난자와 배아를 안전하게 운반하는 ‘미세관배양법(Micro-tube Culture Method)’을 개발해 관련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36년간 서울대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한 그는 5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고인의 호를 따 ‘설랑(雪浪) 문하생’으로 불리며 국내외 생명과학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재직 시절.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서울대학교 재직 시절.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교육부 장관 재직 시절.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교육부 장관 재직 시절.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자격 없는 회원은 안 된다”…원칙 세운 과학 행정가

40대 후반부터는 과학 행정가로 활동하며 국내 과학기술 발전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1980년대 초에는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을 주도해 국내 바이오산업의 토대를 마련했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과학기술계의 체질 개선을 이끌었다.

1994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창립과 함께 초대 원장을 맡아 엄격한 회원 선출 원칙을 세운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조 전 원장은 “자격 있는 사람이 탈락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격 없는 사람이 회원이 되면 한림원의 권위를 지킬 수 없다”는 원칙 아래 창립회원 후보 500여 명 가운데 40여 명만 최종 선발했다. 이 같은 엄정한 심사 원칙은 지금까지도 한림원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국제백신연구소(IVI)의 한국 유치에도 기여하며 국내 백신 연구 기반 확충에도 힘을 보탰다.

조완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조완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 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민주화 격동기 서울대 이끈 ‘소방수 총장’

교육 행정에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 서울대 제18대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학칙에서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징계 학생 1000여 명의 복학을 허용하는 등 대학 민주화와 자율성 회복에 기여했다.

당시 ‘소방수 총장’으로 불렸지만 학장·총장 직선제를 수용하며 갈등을 조율했고,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4년 임기를 모두 마친 마지막 관선 총장으로 기록됐다.

1992년에는 제32대 교육부 장관을 맡아 대학 자율화와 교육 재정 확충 정책을 추진했다.

◇한국 과학자의 노벨상“ 꿈 남기고 영면

조 전 원장은 90대 후반에도 하루 7000보를 걸을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했다.

생애 마지막까지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걱정했던 그는 ”한국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을 마지막 소원으로 남겼다.

평생 척박했던 국내 기초과학의 토대를 일구고 후학을 길러낸 그의 별세 소식에 과학계와 교육계에서는 깊은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의 장례는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葬)’으로 엄수된다.

빈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2026년 7월 16일 오전 7시

장지:서울추모공원, 시안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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