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청소년 10명 중 8명 이상이 여전히 SNS를 이용하고 있었고, 기존 계정 유지와 우회 가입을 막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플랫폼에 연령 확인 책임을 부과한 호주식 ‘플랫폼 책임’ 모델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여부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정부 차원의 강력한 청소년 SNS 규제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호주의 첫 평가 결과는 한국형 규제의 실효성과 플랫폼 책임 범위를 가늠할 중요한 선행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호주 온라인안전규제기관(eSafety)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소셜미디어 최소 연령(SMMA) 평가’ 초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법 시행 전 10~15세 청소년의 86%가 최소 1개 이상의 연령 제한 SNS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시행 3개월 뒤인 올해 3월에도 이용률은 81.5%로 집계됐다. 법 시행 전 대비 4.5%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친 것이다.
매일 또는 그 이상 SNS를 이용한다는 응답 역시 시행 전 약 60%에서 58%로 소폭 감소했다.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SNS 이용 습관을 바꾸기에는 제한적인 효과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이번 평가는 eSafety가 스탠퍼드대 소셜미디어랩 등 국제 학술자문단과 함께 4000여 명의 아동과 가족을 2년간 추적 조사하는 연구의 첫 결과다.
호주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연령 제한 SNS 계정 보유를 제한하는 법을 도입했다. 대상 서비스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스냅챗, X(옛 트위터), 레딧 등이다.
호주는 이용자나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에게 연령 확인과 미성년 계정 차단 의무를 부과하는 ‘플랫폼 책임’ 모델을 채택했다. 위반 플랫폼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지난 6월에는 최대 과징금을 높이고 규제당국의 조사 권한도 강화한 바 있다.
호주 온라인안전규제기관
eSafety는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로 플랫폼의 미흡한 연령 확인 시스템을 꼽았다.
보고서는 “법 시행 이전 계정을 보유했던 대부분의 청소년이 기존 계정을 유지하거나 새 계정을 만들 수 있었다”며 “플랫폼들이 효과적인 연령 확인 조치를 시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존 계정을 유지한 청소년의 약 절반은 “플랫폼이 자신의 나이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일부는 계정에 이미 16세 이상으로 등록돼 있었거나, 연령 확인 시스템이 실제 나이보다 높게 판단한 사례도 있었다.
다만 유튜브, 스냅챗, 틱톡 등 일부 플랫폼의 계정 보유율은 52%에서 42%로 감소해 신규 계정 생성 자체는 일정 부분 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eSafety는 지난 3월에도 메타, 구글(유튜브), 틱톡, 스냅챗 등 주요 플랫폼의 연령 확인 조치가 미흡하다는 준수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현재 관련 법 준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메신저·게임·레딧으로 이동…“부모 인지도 오히려 감소”
규제 시행 이후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의 SNS 이용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자녀의 온라인 활동을 관리하고 피해 발생 시 조기에 개입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규제 대상 서비스에서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확인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레딧 이용률은 6%에서 9% 이상으로 증가했고, 메신저와 온라인 게임 이용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eSafety는 “부모의 인지 감소는 온라인 피해 발생 시 지원과 조기 개입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며 “정책 효과뿐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16세 이하 SNS 규제’ 추진…호주 한계가 남긴 과제
호주의 사례는 국내 청소년 SNS 규제 논의에도 중요한 참고점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2026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16세 이하 SNS 접근 제한을 논의해보자”고 언급하며 제도 마련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도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청소년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검토되는 방안에는 △만 14세 미만 SNS 가입 제한 △플랫폼 사업자의 연령 확인 의무화 △부모 동의 및 감독 기능 도입 △추천 알고리즘·무한 스크롤·자동 재생 등 과몰입 유발 기능 제한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특히 14~19세 청소년에 대해서는 가입 자체를 일률적으로 막기보다 추천 알고리즘,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등 이용자의 장시간 체류를 유도하는 기능을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게임 셧다운제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며 “가입 자체를 일률적으로 막기보다 청소년의 기본권과 보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호주의 첫 평가 결과가 보여주듯 법 제정만으로는 청소년 SNS 이용을 제한하기 어렵고, 플랫폼의 실효성 있는 연령 확인 의무와 해외 사업자에 대한 집행력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를 최소화하면서 성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AI 기반 연령 추정 기술, 디지털 신원인증, 우회 가입 차단 기술 등이 새로운 규제 인프라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