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은수저가 구독자들의 소소한 꿀팁을 나누고자 레시피 공모를 진행한 것.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집밥은커녕 식당에서도 보기 힘든 범상치 않은 레시피들이 대거 접수됐다.
은수저는 파이널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업장 레시피가 어렵다고 해서 집에서 만드는 쉬운 레시피를 모아보려 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다”며 “집에서 요리하는 분들이 업장보다 더 ‘괴인’ 같고 괴랄한 레시피를 갖고 계셨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주말에 시간이 남는데 왜 2~3시간 만에 요리를 끝내냐. 16시간 동안도 할 수 있다”는 식의 고수들이 속속 등판하며 총 571건의 독창적인 응모작이 쏟아졌다.
은수저는 571개 응모작 중 레시피를 선정한 기준에 대해 “요리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스토리가 핵심이었다”며 “571명의 사연을 모아보면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분들이 존재한다. 다들 맛있었지만 선발 과정에서는 스토리가 잘 전달되는지, 이른바 ‘팔리는 콘텐츠’가 될 수 있는지를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괴인들의 집단지성과 ‘실시간 전화’가 만든 파이널
결국 판을 키운 은수저는 유튜브와의 협업을 통해 본격적인 대결의 장을 마련했다. 일하는 용형, 마법소년 김셰프, 맛수령, 만원요리 최씨남매, 셰프 장호준 등 인기 요리 크리에이터 5팀이 구원투수로 투입돼 현장 추첨으로 구독자의 레시피를 하나씩 맡아 100분 동안 조리를 진행했다.
이날 파이널 현장은 크리에이터들 간의 치열한 집단 지성과 생생한 현장감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은수저는 요리 스튜디오와 대기실을 수시로 넘나들며 현장에 온 동료 유튜버들과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정형화된 대본이나 정식 연출에 가둬두기보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오간 유용한 조언과 유연한 아이디어가 조리 과정에 바로 반영되면서 경연대회 전체의 완성도와 프로그램의 품질이 실시간으로 끌어올려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번 대회의 핵심은 ‘실시간 전화 가이드’였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현장에 달려온 구독자 5인은 별도 공간에서 영상 통화로 크리에이터들에게 직접 조리법을 전수했다. 은수저는 “요리는 가장 맛있는 최적의 타이밍이 있어 한 공간에서 가장 좋은 타이밍에 다 같이 비교해보고 싶었다”며 “참가한 요리 크리에이터 7명을 모두 구독한 ‘찐팬’ 구독자들과 함께 결승을 만들어간다는 점이 이번 콘텐츠의 가장 핵심적인 재미 요소”라고 설명했다.
요리 유튜버 '은수저'가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한광범 기자)
◇“일부러 힘뺐다”…음소거로 봐도 편안한 유튜버다운 영상
현장에는 이색 참가자도 눈길을 끌었다. 은수저와의 첫 전화 통화 후 유튜브 개설을 권유받아 실제 채널을 열고 구독자 2만 명을 모은 ‘카레 괴인(유지환)’은 대회 당일 ‘카레 갑옷’ 복장으로 나타나 남다른 진심을 과시했다. 은수저는 “카레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며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은수저는 이번 대회에서 고가의 장비나 정교한 연출 대신 의도적으로 힘을 뺀 촬영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솔직히 나사 하나 빠진 느낌, 흔히 말해 ‘짜친다’고 느낄 정도로 일부러 힘을 뺐다”며 “조명도 하나 없이 찍었는데, 유튜버는 힘을 빼는 게 더 중요하다. 시청자분들도 큰 걸 바라지 않고, 버스에서 보든 이어폰이 없어 음소거로 보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 진짜 영상이라 생각한다”고 자신의 콘텐츠 철학을 밝혔다.
OTT 영상과 유튜브 영상의 근본적인 차이점 역시 ‘편안함’과 ‘힘 빼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고품질과 거대한 연출을 지향하는 전통 매체나 OTT와 달리, 시청자가 부담 없이 접근하고 제작자 또한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가진 고유의 무기라는 취지다.
구독자들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크리에이터들이 완성한 다섯 가지 요리. (사진=유튜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벌써 ‘자취 요리대회’ 기획 중
어느덧 1200개에 달하는 다작 영상을 올리며 매일같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는 ‘유연한 패러디와 재구성’을 꼽았다. 은수저는 “주변의 수많은 유튜버 채널을 레퍼런스로 삼아 흥미로운 구성이나 장면을 가져온 뒤 제 색깔을 입혀 재구성한다”며 “남의 포맷이라도 두 가지를 합성하거나 제 방향으로 살짝만 수정해도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가 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늘 염두에 두고 임한다”고 공개했다.
또한 유튜브 플랫폼 내 트렌드 변화에 대해서는 ‘알고리즘과의 심리전’으로 해석했다. 그는 “알고리즘은 거대한 뇌를 가진 사람과 같다. 똑같은 메뉴만 먹으면 질리듯 시스템도 같은 패턴의 영상만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고 계속해서 흐름과 변화를 요구한다”며 “작년 흑백요리사 열풍처럼 한 달 만에 열기가 빠지기도 하는 등 유행은 늘 바뀌지만, 요리 콘텐츠는 폭발적인 붐이 없더라도 꾸준한 수요가 유지되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분야”라고 짚었다.
이번 요리대회가 스튜디오 대여부터 전 팀원의 동원까지 채널 운영상 커다란 모험이자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팀 전체가 ‘알을 깨고’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유튜브 측의 지원 사격 덕분에 의욕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다고 밝힌 그는 이미 다음 행보를 구상 중이다.
은수저는 “이미 이 작업에 중독돼 버렸다. 벌써 다음 시즌을 기획하고 있다”며 “다음번에는 원룸을 하나 빌려서 ‘자취 요리대회’ 같은 형식으로 스튜디오 촬영 부담을 줄이고 훨씬 더 힘을 뺀 상태로 편안하게 찾아올 것”이라고 밝혀 기대를 모았다. 끝으로 은수저는 구독자들을 향해 “정통 요리 유튜버 은수저,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자아자 화이팅!”이라는 특유의 유쾌한 다짐을 전하며 현장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