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기체 줄 세우는 기술 개발…탄소 포집·수소 저장 새 길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8월 11일, 오후 07:07

[이데일리 안유리 기자] KAIST 연구진이 기체를 원하는 모양으로 ‘줄 세우는’ 새로운 소재 설계 기술을 개발했다. 향후 이산화탄소와 수소 등에 적용되면,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탄소는 더 잘 골라 잡고 수소는 더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맞춤형 소재 개발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왼쪽부터), 김영훈·김도훈 박사과정, 김승우 석사과정. 오른쪽 위는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임윤성 박사. (사진=KAIST)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왼쪽부터), 김영훈·김도훈 박사과정, 김승우 석사과정. 오른쪽 위는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임윤성 박사. (사진=KAIST)
KAIST는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 연구팀이 아주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린 다공성 물질 안에서 기체를 결정처럼 규칙적으로 ‘줄 세우고’, 원하는 기체 배열을 만드는 소재까지 인공지능(AI)으로 설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팀은 미세한 구멍에 기체를 담거나 골라낼 수 있는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활용했다. MOF는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미세한 구멍에 기체를 담을 수 있어 일종의 ‘분자 스펀지’와 같다. 연구팀은 수많은 MOF 구조를 탐색해 기체가 제멋대로 흩어지지 않고 결정처럼 규칙적으로 배열되는 ‘가스 격자(Gas Lattice)’ 현상을 찾아냈으며, 나아가 AI를 활용해 원하는 기체 배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다공성 구조를 직접 설계하는 데도 성공했다.

지금까지 다공성 소재 연구에서는 기체가 얼마나 많이 흡착되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기체 분자 역시 소재 내부의 빈 공간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붙는다고 여겨져 왔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체가 들어가는 미세 공간을 정교하게 설계하면 기체가 자리 잡는 위치와 배열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쉽게 말해 기체를 담는 ‘그릇’의 크기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기체가 어디에 자리 잡을지까지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흡착제 중심 설계와 가스 격자를 포함한 가스 격자 디자인 비교. 기존 설계는 금속과 리간드를 조절해 흡착제-기체 상호작용을 최적화하고 무질서한 흡착상을 다루는 반면, 가스 격자 디자인은 기공 내 기체-기체 상관관계와 구조화된 배열까지 설계 대상으로 포함하여 질서화된 흡착상과 보다 제어 가능한 흡착 응답을 구현하는 개념을 보여준다. (사진=KAIST 제공)
기존의 흡착제 중심 설계와 가스 격자를 포함한 가스 격자 디자인 비교. 기존 설계는 금속과 리간드를 조절해 흡착제-기체 상호작용을 최적화하고 무질서한 흡착상을 다루는 반면, 가스 격자 디자인은 기공 내 기체-기체 상관관계와 구조화된 배열까지 설계 대상으로 포함하여 질서화된 흡착상과 보다 제어 가능한 흡착 응답을 구현하는 개념을 보여준다. (사진=KAIST 제공)
연구팀은 단일 원소 기체인 제논(Xe)을 이용해 이를 확인했다. 방대한 금속-유기 골격체 구조를 탐색한 결과, 특정 코발트 기반 다공성 물질(Co-CAU-36) 안에서 제논이 규칙적인 격자를 이루는 현상을 찾아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GCMC) 결과, 제논은 기공 안에 제멋대로 흩어지는 대신 ‘체심 입방 격자(BCC)’라는 일정한 결정 형태로 정렬됐다. 상자 안에 공을 아무렇게나 쏟아 넣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자리에 공을 하나씩 맞춰 놓은 것처럼 제논 원자들이 일정한 위치에 규칙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는 MOF의 미세한 기공이 일종의 ‘틀’ 역할을 해 제논 원자들이 자리 잡을 위치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즉, 기체 자체에 극한의 조건을 가해 결정화하는 것과 달리, 기체가 들어가는 공간을 이용해 규칙적인 배열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서로 다른 기체를 섞었을 때는 흥미로운 분리 현상도 나타났다. 산업적으로 분리 가치가 높은 제논(Xe)과 크립톤(Kr)을 함께 넣자 제논이 먼저 규칙적인 껍질 형태의 격자를 만들고, 크립톤은 그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두 기체가 뒤섞이는 대신 서로 다른 공간에 나뉘어 자리 잡은 것이다.

이는 혼합기체를 분리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는 주로 소재에 더 잘 달라붙는 기체를 선택적으로 잡아내는 방식에 주목했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기체가 만드는 ‘배열’에 따라 서로 다른 기체가 공간적으로 나뉘는 새로운 현상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원하는 모양으로 기체를 배열하려면 어떤 소재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도전했다.

이를 위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유전 알고리즘을 결합했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좋은 소재를 하나씩 찾아가는 대신, 원하는 기체 배열을 먼저 정하고 AI가 이에 적합한 다공성 구조를 거꾸로 찾아가는 ‘역설계’ 방식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체심 입방(BCC)은 물론 면심 입방(FCC) 형태로 기체를 배열할 수 있는 새로운 다공성 구조를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는 ‘좋은 스펀지를 먼저 찾고 그 안에서 기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했다면, 이제는 ‘기체를 이런 모양으로 배열하고 싶다’는 목표에서 출발해 그에 맞는 스펀지 구조를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향후 이 기술이 이산화탄소와 수소 등 다양한 기체로 확대되면, 목적에 따라 필요한 기체를 선택적으로 포집·분리하거나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소재 설계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분자의 위치와 배열에 따라 화학반응이 달라지는 촉매 분야에서도 원하는 반응을 유도하는 소재 설계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김지한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체를 다공성 물질 안에서 결정처럼 줄 세운 첫 사례”라며 “기체를 얼마나 많이 담을지만 고민하던 데서 나아가, 원하는 배열까지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산화탄소 등 다양한 분자에 적용하면 목적에 맞는 분리·저장 소재를 설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영훈 박사과정과 김도훈 박사과정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하고, 김승우 석사과정과 임윤성 박사가 제2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6월 23일 온라인 게재됐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국연구재단 이종소재지원사업과 한국연구재단 탑-티어 연구기관 간 협력 플랫폼 구축 및 공동연구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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