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8496억원의 과징금이 걸린 공정거래위원회의 구글 앱마켓 사건이 한미 디지털 규제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의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쿠팡 정보유출에 대한 정부의 처벌과 '가짜뉴스 처벌법'이라 불리는 개정 정보통신망법까지 잇달아 문제 삼은 데 이어 구글 사건까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로 인식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양국 간 디지털 통상 갈등이 한층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한국 정부는 국내 법 집행은 특정 국가나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美 연구원 "디지털 규제, 한미 기술협력 신뢰 흔들 수 있어"
12일 업계에 따르면 나이젤 코리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 객원연구원은 최근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 기고문에서 한국의 디지털 규제가 한미 경제·기술 협력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리는 "한국과 미국의 파트너십과 상호 의존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깊어졌다"며 "양국 기업들은 서로의 시장에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며 AI와 첨단산업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고 있지만, 디지털 규제를 둘러싼 무역 마찰이 양국 관계의 신뢰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7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AI 서밋'을 대표적인 협력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삼성전자와 SK그룹은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등 미국 기업들과 총 9500억달러 규모의 AI 반도체·인프라 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디지털 규제 분야에서는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리는 지난달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반독점소위원회가 발표한 '경쟁에 닫힌 한국(Closed for Competition: South Korea's Discriminatory Attacks on American-owned Businesses)' 보고서를 인용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집행이 미국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정위의 시장지배력 남용 과징금 상위 10건 가운데 미국 기업이 7건을 차지했고 과징금 규모는 전체의 95.5%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구글 앱마켓 시장지배력 남용 사건과 미국 반도체 기업 아날로그디바이스(ADI)에 대한 제재 절차도 사례로 제시했다.
코리는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에 과징금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설명만으로는 어떤 사건이 조사 대상이 되고, 어떤 방식으로 법 집행이 이뤄지는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며 "한국에서는 여러 규제기관이 동시에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서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뿐 아니라 다른 정부 기관의 사례도 함께 언급했다.
그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지난 6월 쿠팡에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6236억 원)을 부과했고 7월에는 국세청이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한 점도 거론하며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가 누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 © 뉴스1 김성진 기자
트럼프 행정부, 구글 제재한 EU에 보복관세 100% 부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 7일 이른바 '가짜뉴스 처벌법'으로 불리는 개정 정보통신망법과 관련해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법 시행 배경과 허위·조작정보의 범위, 집행 기준 등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개정법이 규제하는 허위·조작정보의 범위가 모호하고 한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표현을 규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구글과 메타, X 등 미국 플랫폼 기업이 주요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 기업과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쿠팡을 둘러싼 규제에 대해서도지난 4월 미국 하원 공화당 연구위원회(RSC) 소속 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쿠팡 조사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에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쿠팡에 과징금이 부과된 이후인 7월에는 하원 법사위원회가 보고서를 내 "쿠팡을 비롯한 미국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규제가 한미 무역합의에 위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흐름은 최근 디지털규제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통상 문제와 연계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리는 보고서에서 EU가 디지털시장법(DMA) 위반을 이유로 구글에 8억 9000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을 약탈하는 행위"라며 무역법 301조 조사와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당시 보복관세로 최대 100%가 부과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코리는 이를 두고 미국이 해외의 빅테크 규제를 경쟁법 집행이 아닌 통상 현안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 역시 최근 흐름과 같은 '미국 기업을 표적화 한' 규제를 지속한다면 '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코리의 주장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면, 구글에 대한 이번 공정위 제재가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보복관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리는 "한국은 현재 진행 중인 한미 무역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규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양국 관계 전반으로 갈등을 확산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규제 개선은 기술동맹을 더욱 강화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기술 분야를 넘어 양국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구 구글코리아 사장은 29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 2026'에 참석했다. 2026.04.29. © 뉴스1 신은빈 기자
공정위, 구글에 최대 8496억 과징금 가능…디지털 갈등 분수령
업계에서는 공정위의 구글 사건이 향후 한미 디지털 규제 논의의 향방을 가늠할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구글이 게임사들과 체결한 이른바 'GVP(Game Velocity Program)' 계약을 통해 경쟁 앱마켓보다 구글플레이에 유리한 조건으로 게임을 출시하도록 유도해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하고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심사관은 관련 매출액을 약 14조 1600억 원으로 산정했으며, 공정거래법상 법정 최대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6%까지 부과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법률상 상한으로 실제 제재 여부와 과징금 규모는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한국 정부는 국내 디지털 정책이 특정 국가나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과 관련해서도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미국 측에 법 제정 취지와 집행 방향을 설명하고 있으며, 공정위 사건 역시 경쟁법에 따른 개별 사건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에서 쿠팡 조사나 정보통신망법 등 개별 현안을 넘어 한국의 디지털 규제 전반을 문제 삼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공정위의 법 집행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문제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며 "구글 사건 역시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만큼 공정위가 어떤 근거로 어느 수준의 처분을 내리는지,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inju@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