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사진=KoNECT)
이 질문을 받으면 보통 “10년 이상 걸립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곧바로 다음 질문이 돌아온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한마디로 답하기는 어렵다. 신약개발은 좋은 물질 하나를 발견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시험을 거쳐 사람에게 처음 투여하고, 적절한 용량을 찾고, 환자에게 실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매번 같은 품질의 약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입증해야 한다. 그렇게 쌓은 수많은 자료를 정리해 규제기관을 설득하는 과정도 남아 있다.
그 사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고, 임상시험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신약개발은 과학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풀어가는 이야기다.
나는 그 이야기의 여러 장면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경험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약 20년간 신약 허가자료를 심사했다.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를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이 약을 환자에게 투여해도 안전한가. 제시된 용량은 적절한가. 임상시험 결과가 실제 약의 효과를 보여주는가. 개발사가 문을 두드리면 문 안쪽에서 자료를 검토하고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었다.
이후 미국 제약사 엘레바 테라퓨틱스(Elevar Therapeutics)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문밖에 서게 됐다. FDA에 자료를 제출하고 질문에 답하며, 회의에서는 회사의 판단과 근거를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FDA에서 심사할 때는 “왜 회사가 이런 자료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적지 않았다. 막상 신약개발사에 와보니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임상시험은 계획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FDA 질문 한 줄에 회사 여러 부서가 며칠씩 회의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회사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 내용이 FDA의 짧은 한 문장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같은 신약개발을 바라보더라도 규제기관과 개발사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은 상당히 달랐다.
지금은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에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글로벌 신약개발을 돕고 있다. FDA의 심사석에도 앉아봤고 개발사의 선수석에도 있어봤으니 이제는 그 사이에서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한국에는 좋은 기술과 가능성 있는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기업이 많다. 하지만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과 글로벌 허가에 성공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떤 임상시험을 설계할지, FDA와 언제 만나 무엇을 물을지, 어떤 자료를 먼저 준비할지에 따라 개발 속도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글로벌 규제기관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도록 돕는 것이 지금 내가 맡은 일이다.
현장에서 기업들을 만나면 비슷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FDA는 왜 자꾸 추가 자료를 요구할까. 임상시험에 성공하고도 왜 허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FDA 미팅에서는 누가 어떤 질문을 할까. ‘신속승인’은 이름처럼 정말 신속하게 허가해주는 제도일까.
임상시험 중단이나 허가 지연, 예상 밖의 보완 요구를 받아든 개발사 입장에서는 FDA 판단이 때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규제기관 시각에서 들여다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FDA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개발사 주장 역시 언제나 충분한 근거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양쪽이 확인하려는 핵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약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 효과를 믿을 만한 자료로 보여줬는가.”
“예상되는 위험보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큰가.”
신약개발과 FDA 규제라고 하면 임상시험계획(IND), 신약허가신청(NDA), 바이오의약품 허가신청(BLA), 화학·제조·품질관리(CMC)처럼 낯선 용어부터 떠올리기 쉽다. 신속승인(Accelerated Approval), 혁신치료제 지정(Breakthrough Therapy Designation) 같은 제도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암호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전문용어 포장을 한 꺼풀씩 벗겨내면 결국 앞선 세 가지 질문으로 돌아간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 효과를 믿을 만한 근거로 입증했는지, 예상되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치료 이익이 큰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앞으로 칼럼을 통해 FDA 심사실과 글로벌 제약사의 회의실, 그리고 KoNECT에서 한국 기업을 컨설팅하며 경험한 신약개발의 여러 장면을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FDA는 왜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지, 임상시험에 성공하고도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FDA 미팅에서는 실제로 어떤 질문이 오가는지 등을 현장의 시각에서 풀어보고 싶다.
물론 실제 사례에는 공개할 수 없는 정보도 있다. 특정 회사나 제품의 비밀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개된 사례와 개인이나 회사를 식별할 수 없도록 정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약개발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전하고자 한다.
가능하면 어려운 규정 설명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가깝게 풀어볼 생각이다. 신약개발 전문가뿐 아니라 제약·바이오산업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전문용어도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려 한다. 교과서보다는 현장 이야기처럼, 규정 설명보다는 한 편의 에피소드처럼 다가가는 것이 목표다.
성공한 신약 뒤에는 화려한 보도자료에 담기지 않는 수많은 고민과 실패, 토론과 선택이 있다. 작은 판단 하나가 개발 일정을 몇 달 앞당기기도 하고, 준비하지 못한 질문 하나가 수년의 지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약개발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라기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FDA 안에서 신약을 심사하고, 개발사에서 직접 허가에 도전하고, 이제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도전을 돕는 자리까지 왔다. 서로 다른 세 자리에서 경험한 신약개발의 서랍에는 꽤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다.
이제 그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려 한다.









